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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이 양말을 신을 거야

자녀의 선택, 부모의 최선

by 미지의 세계

만 3세인 첫째 아이는 요즘 짝짝이 양말에 꽂혔다. 패션으로 나온 짝짝이 양말 말고 진짜 짝이 다른 양말들 말이다. 디자인과 색이 다른 건 기본, 가끔 높낮이가 다른 양말도 챙겨 와선 꼭 그걸 신고 어린이집에 가겠다고 한다. 일부러 짝을 맞춘 양말을 맨 위에 올려둬도 서랍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개의 다른 양말을 조합해 가지고 온다.


몇 번을 말렸지만 그래도 신고 싶다기에 그냥 뒀다. 위험한 것도 아닌데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있어야지 싶어서다. 그랬더니 이번엔 신발도 자기 마음대로 신는다. 해가 쨍쨍한데 장화를 신겠다고 하는 식이다. 나이 차가 별로 안 나는 동생도 그걸 보고 자기 마음대로 양말과 신발을 고르니 아침마다 이 무슨 시절을 초월하는 패션쇼를 하고 있나 싶다.


어찌어찌 보내고 나면 어린이집에서 보내주는 알림장 사진에서 꼭 혼자 유독 튄다. '엄마가 얼마나 신경을 안 쓰면 철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해서 보냈을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된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라면 알림장을 쓰고 보는 분들의 경험과 시간이다. 선생님은 오래 아이들을 봐 온 분들이니 '아, 아이가 고집을 부린 결과구나' 아실 테다. 그리고 같은 반 친구들 엄마도 아침마다 겪으시는 일일테니 이해할 거고.... 아닌가?


아무튼 나는 이제 한 겨울에 내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아이, 언제 어디서든 공주 풀 세트 복장으로 다니는 아이들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렇게 외출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평안을 빈다. 가방에는 적절한 여분의 옷과 신발이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옷차림으로 이야기 하긴 했지만 사실 일상 곳곳에서 벌써 아이와 부딪힐 일이 생긴다. 아이들이 자아가 생기면서 취향도 조금씩 생기는 탓이다. 둘째 아이는 머리를 묶어주는데 꼭 엄마나 어린이집 선생님한테만 머리를 맡긴다. 아빠가 머리카락 근처만 와도 "싫어! 아니야!"하고 도망간다. 평소엔 아빠를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아빠는 머리 묶는 기준이 남다른 데 있다는 걸 벌써 안 것 같다. 여자 어른들은 아이가 얼마나 예쁠지 고려하며 묶지만, 남편은 '덥지 않게', '얼굴이 다 드러나게'만 충족되면 된다고 생각해서 정말 아무렇게나 잡히는 대로 묶는다. 한두 번 아빠한테 머리를 묶어보더니 이건 아니다 싶었나 보다.


머리 묶은 걸 풀 때는 또 어떤가. 고무줄을 잘못 잡아당겨서 머리카락이 세게 잡히면 "아파, 엄마. 조금 살살해." 한다. 처음엔 그 말을 듣고 웃기기도 하고, 어이도 없는데 납득이 되는 요구사항이어서 "미안해. 살살해볼게." 다짐한 적 있다. 고민을 좀 하다가 고무줄 끊는 칼을 사서 풀어줬더니 이제 안 아프단다. 공주님의 우아한 요구 사항이 엄마는 마냥 웃기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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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프리랜서 방송인, 현직 남매 엄마이자 과학해설사.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해요. 매일 검열하고 싸우면서 문장을 써요. 그래도 결국은 따뜻하고 재미있는 글쓰기를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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