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보다 중요한 것
오랜만에 전 직장 선배들을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는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달려야 도착하는 대도시. 선배들과 전 직장, 모든 게 있는 곳이었다. 멀긴 했지만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제가 갈게요. 결심이 가벼웠다.
한동안 못 봤던 인연을 만나는 경우 간단한 선물과 화두를 미리 준비하면 좋다. 잠시 고민을 해보니 이번엔 꽃이 좋을 것 같았다. 수국과 장미, 꽃작약 등이 주요 특산품인 지역에 사는데, 우연찮게 만나는 선배 중 한 분이 수국을 무척 좋아해서다.
약속이 잡히자마자 일부러 동네 꽃집을 찾았다. 인터넷 예약은 받지 않고 오로지 전화나 방문으로만 주문을 받는 곳이었다. 꽃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불편했지만, 지역 방송사에서 오래 일했던 인연들에게 준비 과정을 풀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시골에 이사 온 소감이랄지, 지역성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다.
그런데 약속 당일, 꽃집 사장님의 말씀이 귓가에 꽂혔다.
"일부러 콜롬비아 산을 수입해서 준비했어요. 조금 더 비싸긴 했는데, 예쁘게 해 드리려고. 마음에 드세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마음에 든다고 말씀드린 뒤 슬쩍 여쭈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도 수국이 많이 나지 않나요? 왜 수입을 쓰셨어요?"
"국산은 금방 시들어서요. 이왕이면 오래 가면 좋잖아요."
'아, 국내 토종 수국이어야 이 서사가 완성되는데!'
생각은 그러했으나 사장님의 호의를 이해했다. 그래서 별말 없이 머리 숙여 인사하고 가게를 나왔다. 이렇게 화려한 수국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니 모두들 흥미로워했다. 나중에 한 선배에게 따로 연락이 왔다.
'꽃을 사무실에 뒀는데 덕분에 분위기가 산다. 만약에 시들면 고향이 그리운가 보다, 하고 콜롬비아 커피를 뿌려줄게.'
지역성이 뭘까. 지역 방송국에 처음 들어갔을 땐 서울 출신답게, 서울과의 '비교'로 지역성을 드러내보려고 했다. 무언가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는 것과 대조하고 비교하는 것이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교는 자꾸 대상을 소환해와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A를 소개하기 위해 B를 먼저 설명하고, B와 A의 공통점, 차별점을 나열하는 식이었다. 이내 한계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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