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건 값진 마음이었다
"아가씨, 이거 가지고 가!"
아이들을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다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을 만났다. 양손에는 과일 상자를 들고 있었다. 평소에도 오가며 마주쳤기 때문에 가볍게 인사하고 지나치려는데 나를 불러 세웠다. 돌아보니 어느새 그의 손에는 샤인 머스켓 한 송이가 있었다.
"아가씨 주려고 이걸 오늘 가지고 왔나 봐."
얼떨떨한 마음으로 인사하고 나니 어느새 그는 없었다. 길 위에서 갑자기 공짜 과일이 생겼다.
두 손에 과일 하나를 들고 걷는데 무척 기분이 좋았다. 만약 전혀 모르는 사람이 건넨 선물이라면 의심부터 들었을 것이다. '이게 뭐지? 나한테 이걸 왜 주지?' 하지만 그는 우리 가족 전부를 아는 이웃이었다. 아이들과 양손을 잡고, 함께 걷는 우리 부부와 자주 마주쳤었다. 그의 손엔 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의 손이 있었다. 한마디로 모르는 사람의 난데없는 호의라기보다, 이웃의 깜짝 선물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과일을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는 점이다. 알이 제법 크고 실해서 한 송이 가지고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의 설레어하는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이건 사소한 이유지만, 나에게 '아가씨'라고 불러주었다는 점이다. '뻔히 아줌마인 거 아시면서...' 꼭 미혼이거나 어려 보인다기보다, 투박한 농부가 어색한 이웃에게 최대한 예의 갖춰 부른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갑자기 생긴 과일을 맛있게 나눠 먹었다. 그리고 다음 길에서 그와 마주쳤을 때 감사 인사를 했다. 아이들에게 "저분이 샤인머스켓을 주셨어. 다 같이 인사!" 하자 아이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첫째가 말했다. "맛있었어요. 다음에 또 주세요!" 모두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미소 띤 얼굴에는 좀 더 반가운 마음이 담겼다.
한 번만 이런 일이 있었다면 기분 좋은 해프닝으로 여기고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공짜 과일이 생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루는 수영을 같이 하는 언니가 연락이 왔다. '아는 분이 감을 한 박스 보내주셨는데 너무 맛있다. 양이 많아서 그런데 좀 가져갈래?'
평소 타인의 배려나 호의를 잘 받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가끔은 상대가 건네는 마음을 잘 받는 것도 우정의 과정이란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래서 받겠다고 했다. 연락을 받자마자 얼른 집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언니는 이미 큰 봉지 하나를 꺼내 감을 담고 있었다. 일단 들고 있는 봉지가 무척 컸기에 조금 걱정이 됐다. 받은 걸 다 줘버리려나 싶어서다. 그러나 트럭 안에 실린 감 상자를 봤을 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상상보다 세 배 정도 더 많은 양의 감이 있었던 것이다.
"봉지가 안 찢어지려나 모르겠다."
큰 봉지에 가득 담긴 감을 건네받는데 제법 묵직했다. 또 길 위에서, 양손 한가득 과일이 생겼다. 이웃의 정인가, 아니면 시골살이의 맛인가. 둘 다인가? 가족들과 감을 깎아 먹던 밤에는 지역에서 느낄 수 있는 풍요에 대해 생각했다.
돈도 내지 않고 농산물을 받은 경험이 있던가? 바로 시부모님이 떠올랐다. 우리가 도시에 살 때부터 그분들은 직접 농사지은 쌀과 귀리, 과일들을 보내주셨다. 명절 때는 우리가 고기를 사들고 가기도 했지만 사랑을 갚기엔 역부족이었다. 워낙 많이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좀 쉽게 생각하는 면도 있었다. 주변에서 흔해지면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법이다. 특히 자주 박스채 보내주셨던 건 키위였는데, 조금만 놔두면 금방 과하게 익어 시큼툽툽한 냄새를 풍겼다. 남편은 그런 키위를 꾸역꾸역 잘라가며 먹었다.
"키위가 엄청 많은데, 몇 개 상한 건 버리면 안 돼?"
과일을 잘라가며 먹는 것도 일이어서, 옆에서 말렸지만 그는 듣는 척도 안 했다.
"자르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귀찮은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던 그다. 그러면서 유독 키위 먹는 데는 성실함을 보이는 게 이상했다. 그저 모든 것을 과하게 아끼는 구두쇠 기질이 발휘된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의 행동을 다르게 이해한다. 남편은 키위에서, 시부모님의 땀과 노력을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시골에 오면서 쌀과 농산물은 더 흔해졌다. 주변에서도 자주 나누고 마트에서는 산지와 가까워 가격이 저렴하다. 그럼에도 이제는, 설령 도시 출신의 철부지 아내일지라도, 농산물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한 가지를 사도 여러 음식으로 조리하고 끝까지 다 먹는다. 아는 이웃의 자식 같은 생산물을 감히 함부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 얻은 과일들이 실은 공짜가 아니라고, 누군가의 손과 시간이 온 거라고 생각하면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음식을 남기면 지옥에서 다 먹는다'거나, '내가 남기는 이 음식물을 못 먹어서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는 굶고 있다'는 식의 식사 예절 교육이 떠올랐다. 두려움이나 죄책감보다는 논과 밭을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감사함을 느끼는 게 밥을 남기지 않는 데 더 효과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증인이다.
시골에 살면서 농부들과 지낸다. 쌀을 씹는 그 입이, 과일을 음미하는 코가 조금 더 신중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