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시절에는 길 가던 사람들을 다짜고짜 잡아서 이야기할 일이 많았다. 주로 어떤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가벼운 의견이 필요할 때였다. 그러나 그 '가벼운' 반응을 따내는 건 생각보다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저 멀리서 카메라만 보여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망 다녔다. 다만 그 일을 5년 정도 하다 보니 인터뷰 상대를 고를 때 노하우도 생겼다.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보면 이렇다.
일단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버스 터미널, 기차역, 시장 등에 자리를 잡는다. 카메라 기자를 한쪽에 세워 두고 슬슬 걸으며 사람들을 본다. 인상이 좋으면 1차 합격, 눈을 피하지 않으면 2차 합격. 마지막으로 다가가 인사했을 때 받아주시면 그분은 거의 카메라 앞에 세울 수 있는 분이다.
소속과 방송될 채널을 밝히는 건 기본, ("안녕하세요, ㅇㅇ방송국 ㅇㅇㅇ입니다.")
섭외 취지는 최대한 간결하면서 정확하게 말하고, ("ㅇㅇㅇ에 대해 취재 중인데 시민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양해를 구한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1분만 이야기 가능할까요?")
물론 이래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은 순순히 카메라 앞에서 의견을 말씀해 주신다.
그렇게 인터뷰이를 찾을 때 호칭은 거의 '선생님'이다. 처음 만난 상대에게 격식을 차리면서도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데 가장 효과적 이어서다. 물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 위해, 예를 들어 수영장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막 친해지고 싶지는 않을 때 '선생님'이라는 말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스승이 아닌 타인에게 선생님이라 하는 것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어느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단어인 셈이다.
아무튼 그날도 인터뷰를 해줄 것 같은 분께 "선생님"하며 다가갔는데, 그날은 뭔가 좀 달랐다. 선생님이라 불린 분이 대뜸 "제가 왜 선생님이에요? 저 선생님 아니에요!" 하면서 휙 가버린 것이다. 거절이야 수없이 받아봤으니 낯선 건 아니었다. 다만 굳이 애써 고른 호칭까지 거부하며 가버린 분은 처음이라 당황했다.
'그 단어에 무슨 좋지 않은 감정이 있으실까? 아니면 그냥 오늘 기분이 안 좋으셨나?'
마음에 남은 까끌한 기분을 오래 살피며 그분을 생각했다. 얼굴은 잊혀도 문장이 오래 남았다.
낯선 이를 이해하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달 후였다. 대부분은 카메라를 부담스러워했지만, 알려야 할 것이 있거나 뭔가 얻을 게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전면에 나서고 싶어 한다. 정치인이나 각종 기업의 홍보 담당자 등이 대표적이다. 그날도 그런 사람을 인터뷰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사실 보도국에 있으면 '듣고 싶은 게 있는 사람'과 '말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 중 압도적으로 전자에게 매달리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그날도 조금 시큰둥한 마음으로, 그러나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상대를 대했다. 그런데 인터뷰가 다 끝나고 그분이 덥석 내 손을 잡는 것이다.
"이 선생 고생했어요. 이 근처에 맛있는 밥집 하나 있는데, 같이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제가 살게요."
"아, 괜찮습니다. 따로 약속이 있습니다."
순간 마음속에 강하게 올라온 생각은 '제가 왜 선생님의 선생님이죠?' 하는 당혹스러움이었다. 그래도 이후 관계를 위해 없는 약속을 둘러대며 잘 빠져나왔다. 그제야 이전에 만났던 분의 말이 떠오르면서 어느 정도 공감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거리감을 줄이려는 사람은 뭔가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그 목적을 내가 알 수 없을 때, 혹은 공감하지 않을 땐 절로 까칠한 생각이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언제 봤다고 나한테 선생님이라고 하세요, 나 선생님 아니거든요.' 같은.
결국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부르는 순간, 이미 처음부터 그 사람과의 거리를 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서로가 설정한 거리가 엇비슷한 데서 어떤 안도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을 조금 더 신중하게 고르게 되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 하나에도 내가 만들고 싶은 거리와 의도가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끔 먼저 묻는다.
"뭐라고 불러드리면 될까요?"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배려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한 선 긋기로 느껴질 수 있다. 그래도 가능한 한 상대가 설정한 거리를 존중하려 한다. 이전처럼 서로 당황스럽지 않은 사이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