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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저희 아이도 그랬어요

by 미지의 세계

어릴 적엔 스스로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앞에 서면 덜덜 떨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어 했지만, 정작 많은 친구들과 만나고 나면 지쳐 눕는 애였다. 여러 사람보단 한 친구와 오래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 그러면서도 모두의 관심을 받으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그런 성향을 '내향적'이라고 한단 걸 안다. 그리고 내향이든 외향이든 우월한 건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내가 자랄 때만 해도 그런 단어는 없었다. '내성적'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단어가 있다고 해서 성향이 옹호받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어린이가 눈길을 받는 시대였다.


나를 외향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 부모님은 참 많은 무대에 나를 세웠다. 다리가 떨리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시선이나 박수 등, 좋아하는 면을 찾아 버텼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는 필요한 만큼 외향적으로 보이게 됐지만 기본 성향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내향인으로 돌아갔다.



그래서일까. 특히 첫째 아이를 보면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가깝고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마구 까불고 춤도 추는데, 조금이라도 낯선 곳에선 도통 움직이지를 못한다. 하루는 큰맘 먹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가며 문화센터 수업에 등록한 적이 있다. 체육 선생님이 와서 아이들을 춤추게 하는데 우리 아이만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내게 와서 앉았다. 아무리 일으켜 세우고, 용기를 북돋아도 그뿐이었다. 50분 내내 무릎 위에만 있는 아이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었다.


아이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화가 났다. 아이를 데리고 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탓이다. 시간 맞춰가며 수업을 신청했고, 옷도 예쁘게 입혀서 데리고 왔다! 그러나 아이가 스트레스받아하는 모습을 보고 얼른 마음을 다잡았다. '뭣이 중한디?' 유명한 영화 대사를 속으로 되뇌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돌이켜 보면 그날 화가 났던 이유는 내가 기대한 장면이 무너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내가 보고 싶은 아이의 모습을 위해 애쓰지 말자고, 다시 생각했다.


그 뒤로는 아이의 참여 의사를 묻고 수업을 신청하거나, 아예 가족끼리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더 만들었다. 내향적인 아이일지 모르겠다고, 그러면 적어도 내가 자랄 때 겪었던 다리 떨리는 긴장감은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이집 내에서의 시간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외부 강사님이 오신다. 신나는 노래도 틀고 함께 춤추거나 색색의 천을 휘휘 감으며 논다. 그런데 전달받은 영상과 사진에서 우리 아이는 혼자 멀뚱히 서 있는 것이다. 대번에 아이의 상황이 파악되면서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혹시나 선생님의 참여 유도가 아이에겐 스트레스가 아니었을지, 또 가만히 있는 아이가 수업에 방해됐던 것은 아닐지... 아이와 어린이집 전체를 염려하는 고민들이 두서없이 쏟아졌다. 조금 고민하다가 답글을 썼다.


'사실 아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걸 힘들어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나 봅니다. 그래도 단체 생활인데 분위기를 해치거나 선생님을 힘들게 하진 않았을지 걱정이 되네요.'


잠시 후 선생님의 답글이 달렸다. 장문의 글이었다.


'어머님, 괜찮아요. 저희 아이도 그랬어요.....'


선생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된 글은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수업에 방해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래도 말미에는 조금 참여하더라는 이야기- 그리고 선생님의 자녀도 어릴 적 그래서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문득 눈물이 조금 고였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의 보호자기도 하지만, 사실 직업인이다. 일터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부모를 위해 굳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꺼낼 필요도 없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렇게 했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야 하는,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


그런 대화를 하고 나니 그제야 선생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다시 보였다. 선생님의 프로필 사진 속에는 두 아이가 나란히 손을 잡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처럼, 그러나 우리 아이들보다는 훨씬 큰 남매였다. 선생님도 퇴근 후 가정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임을, 그것도 나보다 먼저 이 시기를 지나간 선배 엄마임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저도 그땐 잘 못했지만 지나고 나니 자기 영역에서는 또 잘 나서기도 하더라고요. 너무 염려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의 마지막 문단은, 비록 새로울 것 없는 조언일지라도 따뜻하게 와닿았다. 게다가 선생님 역시 나와 같은 생각으로 기다려주실 수 있다고 하니 마음이 든든했다. 그 뒤로는 사진 속 아이의 표정이 굳어있어도 불안하지 않았다. 더 이상 언급하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연말쯤이 되자, 아이는 영상이든 사진에서든 신이 나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은 ㅇㅇㅇ가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박자를 딱딱 맞춰서 하는 바람에 선생님들 모두 크게 웃었답니다.'


마침내 키즈노트에 이런 문장이 적혔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 한편이 조용히 저릿했다. 아이는 조금씩 자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기 속도로 세상에 나설 시간을 충분히 가진 덕분이었다. 이후 반이 바뀌고 선생님이 바뀌면서 다시 아이의 표정은 굳어졌지만, 그래도 이제는 여유있게 볼 수 있었다. 아이는 시간만 조금 가지면 다시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어릴 적 무대에 서서 다리를 떨던 내가, 이제는 아이의 속도를 믿으며 기다린다. 그 기다림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저희 아이도 그랬어요”라는, 먼저 이 시간을 지나온 누군가의 조용한 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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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프리랜서 방송인, 현직 남매 엄마이자 과학해설사.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해요. 매일 검열하고 싸우면서 문장을 써요. 그래도 결국은 따뜻하고 재미있는 글쓰기를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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