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집에는 48개월, 27개월 아이들이 산다. 그런데 가끔은 어른스러운 말을 해서 엄마, 아빠를 웃기거나 놀라게 한다. 첫째가 좀 더 어렸을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아이가 우리 앞에 인형을 눕혀두더니 갑자기 한숨을 푹 쉬었다.
"오메, 쉬를 많~이 쌌네... 기저귀 갈아야겠다!"
그때는 그냥 웃고 넘어갔는데 그로부터 한참 뒤에 둘째가 이런 말을 했을 땐 기특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놀아야 기분이 좋겠지? 네 친구잖아. 친구끼리는 싸우지 않는 거야."
평소 아이들은 부모의 말습관을 종종 따라 하므로, 아이들이 도발적인 말을 할 때마다 일단 웃고 '내가 저런 말을 했었나?' 돌아본다. 다만 가끔은 도통 출처를 찾을 수가 없는 말들을 할 때도 있다. 아마도 부모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선생님들의 말투일 것이다.
그날도 아이들이 뭐라고 재잘거리고 있었다. 사실 재잘거린단 표현은 너무 순화한 말이고,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자신의 실수보단 오빠나 동생의 허물이 더 크게 보일 나이였다. 참다못한 첫째가 소리쳤다.
"야, 네가 선생님이냐?"
"선생님 아닌데? 난 ㅇㅇㅇ인데?"
자신을 지적할 사람은 선생님뿐이라고, 첫째는 굳게 믿는 것 같았다. 반면 둘째는 해맑게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결국 선생님은 아니지만 그만큼 아이들에게 신뢰받는 내가 나서서 둘을 중재했다.
"아, 조용히 해! 둘째가 이리 와. 좀 떨어져서 각자 놀아."
만 3살, 아직 어린 첫째가 느낄 정도의 절대적인 권위- 아마 그 신뢰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지내면서 쌓인 시간 덕분일 것이다. 선생님이 알려주셨다며 식사 전 인사를 하고, 가끔 다정한 말도 한다. 아이들이 예의 있게 구는, 보석 같은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원석을 깎아내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도 닦는 기분으로, 말도 통하지 않는 상대를 구슬리고 달래는 마음을.
내가 어린이집 선생님을 애틋하게 보게 된 건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아이와 연휴를 보내본 이후였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첫날에는 그 시간을 정말 좋은 추억으로 채우겠다고 다짐했다.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외식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아침에 아이를 깨우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단단한 결심은 그날 점심시간에 바로 흐지부지 되었다. 아이들이 집에서든, 식당에서든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해서다. 온갖 투정과 심술을 다 받아주다가 결국 오후부터는 표정이 굳어 소리를 치게 됐다.
"조용히 해! 짜증내면 안 들어줄 거야! 이리 와!"
'나도 어렸을 때 그랬지...' 하면서 업보를 청산하는 기분이다. 내 아이를 키우는 일도 그럴진대, 이를 업무로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고될까 싶다.
아이가 선생님의 통제를 벗어나, 마음대로 놀다가 다쳐도 그게 다 선생님의 책임이 된다. 아이의 부모 역시 어린이집 선생님의 고객이다. 여러모로 곤두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전부터도 어렴풋이 그분들의 고초를 알고 있었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니 더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최근에 개그우먼 이수지 씨가 유치원 선생님의 어려움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서 화제가 됐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건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키즈노트에 올리는 부분이었다. 아이들의 사진을 잘 찍기 위해 핸드폰을 바꿨다는 부분에서 웃음이 나오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내용은 기사로도 몇 번 나온 바 있으므로, 애초에 우리 가족은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거듭 이야기했었다.
"사진은 많이 안 찍어주셔도 됩니다. 키즈노트도 매번 올리실 필요 없습니다. 별 일이 없다면, 잘 지낸 줄 알고 있겠습니다."
선생님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하겠어요. 지금이 가장 예쁠 땐데... 너무 힘들지 않은 선에서 많이 찍어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러면 사진 찍는 시간에 아이를 좀 더 돌봐주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그래도 될까요? 그래도 다른 친구들은 다 사진 올려주고 있어서요. 일단 어머님, 아버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결국 선생님들은 우리말을 따라주었고, 우리 가족은 일주일에 한, 두 번만 키즈노트를 받게 되었다. 사진 수도 현저히 적었다. 그래도 우리는 별말 없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결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나보다는 남편이 선생님들의 불필요한 노동을 걱정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키즈노트를 되도록 받지 않겠다'라고 한 것도 남편의 제안이었다. 그런데 나는, 머리로는 이해해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다른 아이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체험을 할 텐데, 사진 찍을 필요 없는 우리 아이는 소외되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우리가 사진을 안 받는다고 해서 선생님의 수고를 얼마나 덜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직장, 과학관을 찾아오는 단체들을 보며 마음을 바꿨다.
과학관은 어린이들도 체험학습을 오는 공간이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들이 열정적으로 사진 찍는 그 현장을 몇 번이나 목격한 바 있다. 생생한 사진을 찍기 위해 소리도 치고, 다른 데 가려는 아이들을 못 보기도 하며, 선생님들이 땀을 뻘뻘 흘리신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그 시간을 좋아하느냐. 그렇지도 않다. 아이는 이미 다 체험하고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데, 다른 친구들이 사진 찍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 큰 아이들은 사진 찍는 순간에 잠깐씩 위축되기도 한다.
결국 이런 결론에 이른다. 아이의 하루가 전부 궁금한 건 부모의 당연한 마음이다. 기술도 그만큼 발전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모든 장면을 수집하는 일은 결코 생산적이지 않다. 그 모든 기록 뒤에는 누군가의 노동과 마음이 놓여있다.
선생님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가르쳐준다. 대개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법, 건네야 할 말과 마음들이다. 이제는 그 말들이 아이들의 입을 통해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온다.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하루에도 아이의 말 한마디 속에는 이미 선생님의 마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