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브랜딩의 시작입니다
퇴근 무렵, 건널목 앞에서 신호등 색깔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엽니다. 익숙하게 물 흐르듯 인스타그램으로 손이 갑니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편백나무의 향을 무심한 듯 맡으며 잎을 다듬고 있는 한 남성분의 사진이었습니다. 궁금해서 눌러봤습니다. 그것은 곧 출시 될 편백나무 추출물을 활용한 샴푸를 알리기 위한 사전홍보 게시물이었습니다. 어떤 브랜드일까, 또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평소 애정하는 서리태콩물두유를 제조, 판매하는 브랜드 후유아 (whoyouare)에서 출시를 앞두고 있는 샴푸였습니다. 이름하여 서리태편백숲 샴푸. 이 시점에서 저는 두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의아하다는 반응입니다. "무슨 콩물두유 만드는 브랜드가 샴푸를 만들지?" 라는 다소 부정적인 태도죠. 다른 한 가지는 "그럴 수 있겠다, 샴푸가 나온다면 한 번 써보고 싶은데?" 라는 긍정적인 태도입니다. 저는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요?
정답은 후자입니다. 출시되면 한 번 써보고 싶은데?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경험이 있던 브랜드였기 때문에 제품 라인 확장 소식을 반겼을까요? 물론 후유아에서 판매하는 서리태콩물두유의 품질을 인정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습니다. 평소 후유아가 콩물두유 이야기만 했다면 저 또한 '무슨 콩물두유가 샴푸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후유아가 자신을 콩물두유에만 한정하지 않고, '건강한 식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그릇에 자신을 담음과 동시에 '기본, 단순함, 자연스러움'이라는 키워드로 브랜드의 지향점을 명확히하고, 직접 그 지향을 실천해왔다는 점에서 음식이 아닌 헤어 케어로의 확장에도 끄덕거릴 수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후유아 who you are' 라는 이름이 서리태콩의 기능 그 이상의 삶의 가치를 이야기해주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만약 '약콩두유'에서 헤어 케어를 낸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미 탈모샴푸가 있더군요!) 약콩두유도 좋아하는 제품입니다. 다만 '약콩' 두유로만 인식됐던 제품 이름 그대로 '약콩모' (탈모샴푸)를 생각할 때, 왠지 모르게 매력이 덜 합니다. 콩물로 머리를 감는 기분이랄까요.
'콩'이라는 재료를 식품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개념인 '탈모'에 적용해 제품 라인을 확장하겠다는 것은 원물을 보유한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확장 수순일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브랜드'로 가져오는 관점에서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후유아가 후유아라는 상위 개념의 철학과 그릇 없이 다른 일반적인 다이어트, 건강, 탈모 방지 음료인 서리태콩물두유 하나로만 제품을 광고해왔다면 제품 라인을 추가함에 따라 고객 머리속에 연상되는 '가치의 연결고리'가 단출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혹하는 인스타그램 제품 광고를 클릭해 홀린 듯 결제를 누르고는 그 제품 브랜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못하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후유아는 서리태콩물두유를 집중적으로 판매할 때에도 두유를 포함, 또는 포함하지 않은 건강하고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요리법을 지속적으로 발신해왔습니다. 저 또한 이 단순하고 건강한 조리법을 여러 번 저장해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기본적이고 단순하며 자연스러운 것이 단순히 제품의 퀄리티만이 아닌, 그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의 페르소나이자 라이프스타일과 연결됨에 따라 기능 그 이상의 가치가 브랜드에 입혀지고, 그 가치가 다시 다른 제품 라인업 확장에 연결고리를 만들어 줍니다.
반면, 약콩두유에 이어 출시된 밥스누의 탈모예방샴푸 '약콩모'는 약콩'두유의 '약콩'이라는 원물을 확장한 사례로, '기능' 그 이상의 연상작용이 없어 신규 제품 출시 시 특별한 가치를 고객 스스로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약콩두유의 전략이 틀렸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약콩두유의 길은 약콩두유 단일 제품의 집중적 판매에 유리한 전략이라면, 후유아는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기본, 단순함, 자연스러움이라는 가치를 담은 더 넓은 그릇을 가지고 그에 준하는 다양한 제품을 확장하는 데 더 유리한 전략입니다. 다만 말이죠. "난 제품 하나만 계속 팔거야" 전략이 아니라면, 그 제품이 말해주는 기능을 담아줄 더 넓은 철학적 그릇이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웃도어 브랜드를 볼 때도 비슷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K2, 내셔널지오그래픽, 블랙야크, 아이더, 네파 등 시장에는 많은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젊은 연예인이나 아이돌이 모델로 나와 '도전'을 이야기하거나 이번에 새로 나온 여름 신상품이 무엇인지, 운동화 성능이 얼마나 업그레이드 되었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기억을 떠올려 보면, 광고에 나왔던 운동화가 K2였는지, 네파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품 그 이상의 가치가 잘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매 시즌 신상품을 홍보해야 하고, 격한 경쟁 상황 속에서 살아남아야하는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큰 액수의 돈을 들여 광고를 했는데 어떤 브랜드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것이 옳은 투자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광고 물량이 적어서, 광고를 잘못 제작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사람들의 머리속에 하나의 명쾌한 연상 자산으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식탁이 거대한 경쟁 시장이라면, 경쟁에 휘둘리지 않을 우리 브랜드만의 그릇이 어떤 그릇이어야 하는지, 그것이 도자기 그릇인지 유리 그릇인지, 그 그릇에 뭘 담았으면 좋겠는지, 그릇에 담긴 음식이 고객의 삶을 더 낫게하는지를 날카롭게 점검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아웃도어 브랜드들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캠핑 애호가를 비롯해 아웃도어 라이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애정하는 브랜드, 스노우피크입니다. 스노우피크 역시 타 아웃도어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의류를 만듭니다. 단, 의류 뿐 아니라 다른 아이템을 제조하는 데 있어 자기만의 명확한 '생각의 그릇' 하에 실행을 결정합니다. 스노우피크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는 그릇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어 인간성을 회복한다"
스노우피크는 아웃도어 라이프 아이템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을 '자연을 정복'하거나 '자연의 혜택을 통해 건강해지는 것'을 넘어 '인간과 자연이, 인간과 인간이 연결되어 궁극적으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을 브랜드의 핵심 그릇으로 생각하고 모든 브랜딩에 임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그릇이 남다르기 때문에 타겟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신선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사회인'이 아닌 '지구인'이라는 것입니다. 스노우피크의 창업주와 임직원들이 캠핑을 하며 모닥불에 둘러 앉아 진솔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시간에 느꼈던 '연결감'을 고객에게도 선물하고 싶다는 것. 그것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또한 인간과 인간이 더 깊게 연결되어 인간성을 회복한다라는 단단한 그릇이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아웃도어 의류 뿐 아니라 최초로 자연에 악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모닥불을 즐길 수 있는 '화로대'를 개발하고,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는 멸종 위기 채소를 활용한 로컬 레스토랑을 열고, 자연과 함께하는 주택을 짓기에 이르렀습니다.
브랜드가 가져야 할 생각의 그릇이라는 것이 꼭 제품 확장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브랜드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정의할 수 있다면 그 목적을 중심으로 브랜딩&마케팅의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있겠지요.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하는 마케팅 활동이 아니라 우리만의 우선순위에 따라 중요한 일들을 이어가다보면 그 점들이 선이 되고, 그 선이 하나의 큰 면을 이루어 고객의 마음과 머리 속에 우리 브랜드만의 풍부한 연상 지도가 그려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브랜딩 & 마케팅 활동, 제품들이 우리 브랜드만의 생각의 그릇 위에서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제대로 된 맛을 내는 요리인가요? 아니면 식탁 위에 개별적으로 놓인 재료들에 가까운가요? 우리 브랜드만의 생각의 그릇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바래봅니다.
프로젝트 문의 : hyewonaloof@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