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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융 Dec 06. 2021

5. 영끌 한채 마련

막차냐 패닉바잉이냐

생각해보면 올해는 진짜 결혼하기 별로인 해 같다.


작년은 코로나가 막 터져서 거리두기 기준도 모호했는데, 올해는 야외 결혼식장도 식사하면 49명, 식사 없으면 99명으로 인원 제한이 있고 심지어 사진 찍을 때도 신랑, 신부, 혼주 외엔 마스크도 벗을 수 없다.  K-결혼식에 식사가 없다니 분노한 어르신들의 욕지거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이런 정책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낸 걸까? 차라리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말이지.



거기에 최근 몇 년간 끝도 없이 오르는 집값과 공급절벽, 패닉바잉, 대출규제 등등..

돌이켜보면 집 사기 가장 좋았다던 십 년 전에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내 연봉은 2배가 안 올랐는데 집값은 2배는 아~주 가볍게 뛰어버렸다. 2배가 뭐야 4배는 뛴 것 같다. (뒤늦은 후회는 해서 뭐하나 누군들 못했을까 ㅎㅎ)


사실 시그널은 계속 있었다.

2-3년 전부터 친구들이 기혼이든 미혼이든 하나둘씩 집을 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는 별 니즈가(생각이) 없었던 나나 예비 신랑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고,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에도 단순히 빚을 내기 싫다는 생각에 시작은 전세로 하자는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5월 초 어느 날, 친한 부부의 신혼집 집들이에 초대를 받았다.


야탑의 구축 아파트지만 올수리로 깔끔한 집.

야탑은 내게 약간 흰쌀밥 같은 아무 감흥 없는 동네였는데 센스 있게 꾸며놓은 그들의 집에 가니 갑자기 동네마저 좋아 보이는 것이다. 동년배 부부의 번듯한 집을 보고, 또 아무것도 없는 우리 커플을 보니 갑자기 상대적 박탈감도 들고 자괴감도 들고 복잡한 심경이 들던 그때, 내 귓가에 들려온 예비 신랑의 순진한 한마디 '외제차로 바꿀까 봐'


그 새하얀 도화지 같던 한마디에 나이브하던 나도 갑자기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집들이를 마치고 야탑에서 판교로 탄천을 따라 한참을 걸으며 우리의 (너의) 안일함, 무지함과 결혼 후 주택마련에 대해 깊은 이야기(훈화 말씀)를 나누었다. (친구는 그날 내가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응 깨달음의 순간은 다소 날카로울 수 있지 아무렴)



오랫동안 예언과 살아오면 계시의 순간이 충격으로 다가오죠
- 샤도우트 메입스, '듄'-


그 길로 정신을 차리고 부동산 어플을 켜보니 내년 초 전세 만기인 우리 동네의 전셋값은 이미 2배 가까이 올라 있었다. 대출이자만 갚다가 평생 무주택자로 살겠구나! 싶어서 정말 빠르고 신속하게 우리의 가능 예산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집들을 보고 다녔다.


(그렇기에 결혼하는 것이겠지만) 친구와 나는 선호하는 거주형태 역시 다행히 결이 비슷했다.

평생을 대단지 아파트에서 살아온 나는 웨딩홀을 싫어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편리하지만 획일적인 그 주거형태가 지겨워서 그 외의 형태를 추구했고, 친구는 평생을 주택에서 살아와서 대단지 아파트에 흥미가 없었다. (그리고 돈도 없고 ^^)

대단지를 추구했다면 용인, 수원, 동탄 등으로 갔을 텐데, 동탄에서 2년간 살았던 적이 있었고 그때의 경험이 나의 라이프스타일과는 정말 맞지 않았었기에 애초에 고려 대상에 넣지도 않았다.


우리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
1) 직주근접
2) 주변에 공원이 가까울 것
3) 테라스가 있거나 남향일 것


이러한 옵션으로 5 군데의 집을 보고 5번째에 계약을 했다. (추진력 한번 ^^)


첫 번째로 찾았던 양재천이 바로 보이는 테라스 복층 빌라는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영혼의 할아버지를 끌어와도 비싸서 포기했고, 어린이대공원을 마주하고 있는 나홀로아파트는 거실 창으로 벚나무가 가득 찬 로망 숲 뷰의 아파트였지만, 강남과 판교가 직장인 우리들에겐 출퇴근이 너무나 불편한 곳이었다. 넓은 테라스를 자랑했던 분당의 한 2층 빌라는 테라스가 희한하게 도로와 같은 높이에 있어 강도 들기 딱 좋아 보였고, 또 다른 서울의 복층 빌라는 좁고 애매한 구조에 건물 바로 앞에 터파기도 안 한 공사장이 있어 입주하면 고생길이 훤히 보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결국 우리의 보금자리가 되었는데, 남향이어서 볕도 잘 들고, 비록 숲 뷰는 아니지만 공원도 10분 내로 걸어갈 수 있고, 회사도 둘 모두에게 가까워서 긴 고민 없이 계약했다.


이 모든 것을 야탑 집들이 이후 한 달 만에 끝냈다는 것. 때마침 6월 중과세 변경 등으로 우리가 집을 알아보던 5월에 급매가 좀 있었고, 예산과 조건에 걸맞은 집을 다행히 구했다. 역시 모든 것은 명분과 납기가 있으면 충분한 것 같다. (이 추진력이 십 년 전에 있었다면 더 넓은 집이 있었겠지만 ㅎㅎ)


여행하던 추진력으로 집까지 휘리릭 구해버린 우리는 이제 그래도 신혼집을 마련했다는 안도감, 앞으로 회사를 아주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리모델링은 어떻게 할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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