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유즈키 아사코 | 이봄)
유즈키 아사코는 <나는 매일 직장 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 등 음식에 관한 소설을 쓰던 작가다. 최근작 <버터>는 일본 열도를 들썩였던 꽃뱀연쇄살인사건(키지마 카나에 사건)에서 모티프를 따와서 쓴 소설이다. 자신의 주특기인 음식에 연쇄살인, 언론, 연대, 대안가족, 결혼 등등 여러 사회문제를 엮어 음식에 관한 인간의 심리를 깊게 파헤쳤다. 6명 모임이 가능해진 주말, 6명은 오프라인으로, 1명은 온라인(줌)으로 모여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Q 책을 읽은 소감
예 _ 끝까지 다 읽지는 못했는데, 평소 요리를 계속 해와서 요리에 관한 표현이 정말 맛깔나고 좋았다. 처음에 좋은 문장에 포스트잇을 붙이다가 너무 많아져서 결국엔 하나도 못붙였다. 요리연구가 이혜정 님의 "을매나 맛있게요~"하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리카의 요리에 관한 표현력이 좋았다.
윤 _ 발제자가 왜 이 소설을 발제하려고 했는지 잘 알겠다. 여성, 남녀관계, 음식, 연대, 혐오, 편견 등등 모든 주제가 버무려져 있었다. 앞쪽은 약간 시간이 걸렸으나 뒷쪽에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읽었다. 공감가고 신박한 표현들이 많아 곳곳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우 _ 다 읽고 나도 주제가 뭔지 잘 모르겠다. '남에게 폐 끼치고 살아도 된다?'려나? 이 소설 속 버터는 욕망, 해방, 죄책감 등을 의미하는 것 같고, 가이지는 음 / 리카는 양 / 레이코는 음+양을 나타내는 게 아닌가 했다. 사실 연쇄살인 스릴러라고 해서 누가 죽거나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없어서 좀 밋밋했다.
은 _ "가지이는 무엇보다 자기를 인정하고 있다"는 부분에 밑줄을 긋고 빠져들어 읽었는데, 리카의 몸무게를 보고 왕짜증이 났다. 8Kg이나 쪘는데 56Kg이라니...장난하나? 거기서 현타가 빡 왔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다이어트에 몰입하고 있다보니 이 부분 보고 분노했다.
포 _ 이 소설은 깨진 관계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봤다. 여자들의 몸에 대해 부위별로 베이글녀니 꿀벅지니 하면서 띄워주고, 상품화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 소설에도 리카가 가지이를 처음 봤을 때 생각보다 날씬해보였다고 나온다. 매스컴에 의해 과대화되는 부분이 있다.
옥 _ 다들 재밌다는데 나는 초반에 좀 힘들었다. 리카가 가지이에게 빠져드는 부분에 저항감이 들었고, 읽다보면 챕터별로 어떤 곳은 리카 시각이고, 어떤 곳은 가지이 시각이고, 그런 식으로 시각이 계속 바뀌니까 힘들었다. 다행히 읽고 나니 좋았다. 뒤쪽에 서로 관계를 풀고 대안가족을 만드는 부분이 좋았고, 특히 미유코 요리교실은 따로 떼서 영화로 만들고 싶을 만큼 좋았다. 구치소 면담 장면에 공감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일본문화와 우리 문화는 다르다보니 그런 듯.
정 _ 일본의 이 뚱녀꽃뱀사건과 비슷한 사건으로 우리나라 포천빌라 고무통 사건이 있다. 그때 나는 좀 과몰입해서 기사를 매일매일 찾아보고 검색했는데, 그 사건의 피고인 여자도 일본사건처럼 외모가 아름답지는 않다. 남자들이 어째서 이런 여자들에게 빠져드는지가 궁금했는데, 나와 똑같은 의문을 가지고 쓴 소설(버터)이 나왔길래 정말 몰입해서 읽었다. 그리고 범죄자를 인터뷰해서 쓴 책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라 유영철을 인터뷰해서 쓴 <살인중독> 같은 책도 읽었는데, 역시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이 흥미로웠다.
Q 등장인물 중 나와 가장 닮은 사람은?
정 _ 리카. 이런 사건에 흥미를 가지고 인터뷰하는 것도, 인터뷰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빠져들어 영향을 받는 것도, 살림이나 요리에 별 관심 없는 것도 다 비슷하다.
옥 _ 나는 원래 리카처럼 대충 먹자는 주의였는데, <최강의 식사>를 만나 키토식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강의 식사>는 나에게 가지이 마나코가 아닐까?
예 _ 레시피를 찾아보고, 있는 재료를 활용하고, 요리시간을 단축하려고 노력하는 등 리카와 레이코를 합한 것 같은 스타일.
윤 _ 음식에 대한 욕망은 가지이 같으나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Q 그래서 가지이 마나코는 3명(확대하면 5명)의 남자들을 살해했을까?
무죄를 주장한 회원은 우와 윤.
우는 셋 다 자살했고, 무죄라고 생각. 윤은 사기와 살해는 다르다고 봤다. 굳이 죄를 묻자면 사기죄와 방조죄를 물을 수는 있지만 살인죄는 아니라고 봤다.
유죄를 주장한 회원은 포. 경찰과 검찰이 유죄 판결을 했으니 유죄라고 봤다. 이 소설은 리카의 입장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범죄자의 심리에 말려들어가 그를 변호해주지만, 경찰과 검찰은 범죄자의 심리에 말려들지 않으니 그들의 판결이 맞지 않을까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 외의 회원들은 간접적으로 죽게 만들었다는 주장. 가스라이팅설에서부터 인터넷 검색 등 정황증거설 등이 나왔다.
Q 빠질 수 없는 음식 이야기. 여기 나오는 음식 중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은?
우 _ 간장버터밥 | 은 _ 명란버터파스타 | 윤 _ 칠면조요리와 세이로소바 | 옥 _ 켄신 준마이 사케 | 포 _ 이 모든 요리에서 버터 빼고. (버터 싫어함.ㅋㅋ)
Q 좋아하는 식재료와 싫어하는 식재료.
은 _ 사과를 안먹는다. 사과를 씹을 때 나는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소름끼친다. 콩요리는 잘 먹었었는데 좋아하던 친척언니가 콩을 골라내는 걸 보고 이후로 안먹기 시작했다. 미나리와 고수 등 향이 강한 식재료는 싫어하고, 계란은 좋아한다. (부모님이 유기농 계란 생산하심)
우 _ 김치 안의 굴을 잘못 먹었다가 토한 적이 있어 한동안 굴을 못 먹었다. 식재료 중에는 감자와 김을 좋아한다.
정 _ 나도 감자를 좋아하는데, 다른 식재료에 비해 덩어리져 있어 다루기 쉽고 쉽게 상하지 않아서 좋다.
옥 _ 나도 김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없이 김만 먹을 때도 있다.
윤 _ 나이 들면서 라면을 반개 밖에 못먹게 되었다. ㅠ.ㅠ 버터나 마요네즈에 대한 혐오가 있었는데, <최강의 식사>를 읽고서 그 편견이 깨졌다.
포 _ 고기. 고기가 좋다.
Q 리카는 일을 위해 가지이 마나코를 속이고 면회한다. 일을 위해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정 _ 모 일본어 출판사에 다닐 때, 다른 학원들에 대한 보고서를 쓰라고 해서 두달 동안 다른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학원에서는 근처 회사원이라고 뻥치고 매달 다른 학원에 대한 보고서를 써서 냈다.
우 _ 그런 거라면 나도 많다. 식당에서 일할 때 경쟁업체에 손님으로 위장해 가서 염탐한 적 많다. 순대국집이라든가 보신탕집 등.
윤 _ 학교 다닐 때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 피죤 본사에 전화를 걸고 도움을 청한 적이 있다. 대학생이라니까 친절하게 잘 받아주고, 자료도 주시겠다고 했는데, 이메일 주소를 불러달라고 해서 '해피옥시(happyoxy)'라고 했더니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피죤의 경쟁사인 옥시 스파이 아니냐고. 사실 그 당시 이영애가 산소같은 여자로 맹위를 떨칠 때라 그것 때문에 붙인 메일주소였는데, 스파이 취급 당하고 결국 자료 못받았다. 그래서 일일이 100명에게 설문조사 하고 현장 취재했던 기억이 있다.
Q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주제는 무엇일까?
우 _ 해방 아닐까? 예쁘거나 날씬해야 한다는 일본의 여성관에서 벗어나자는 게 주제인 것 같다.
옥 _ 소설 전반적으로 편견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윤 _ 다시 일어서는 힘에 대한 이야기라고 봤다. 리카가 마지막에 가지이에게 일격을 당하고 쓰러졌다가 결국 주변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선다. 거기에 주제가 함축되어 있다고 봤다. 주변의 도움을 받고, 도와주기도 해야 하고, 그때 중요한 게 음식이기도 하다. 희생자인 남자들은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날 힘이 없었다.
은 _ 나도 다시 일어서는 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마포대교를 건너면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문구들이 쭉 적혀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 "오늘 저녁 메뉴 00어때?"라고 적혀 있는 문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저녁 메뉴 같은 사소한 것들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된다.
포 _ 관계 회복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고, 그 전부터도 점점 사람들이 혼자살아가고 고립되어 있는데, 이 무너지는 관계들을 어떻게 회복할까에 대한 이야기다.
정 _ 자기 밥은 자기가 해먹어야 한다가 주제 같다. 리카의 아빠를 비롯 가지이의 희생자들이 자기 삶을 남에게 전적으로 의탁하다가 그게 갑자기 없어지자 무너지고 죽는다.
가지이 마나코에게 희생된 남자들과 희생되지 않은 리카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주변의 도움을 받았는가 이다. 내가 쓰러졌을 때 주변의 도움을 받아 일어나고, 남이 쓰러졌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야말로 사람을 살게 하고 다시 일어서게 한다. 이 소설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그런 주제일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토요일 독서모임을 통해 그런 주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역시 같은 소설을 읽어도 다르게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들으면 배우는 것이 많다.
2022년 1월 22일 오전 10시30분
<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 이봄)
참석자 : 정, 포, 옥, 은, 우, 예, 윤 (총 7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