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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Dec 03. 2023

굿은 여성제의였다!

로렐 켄달의 [무당, 여성, 신령들]

로렐 켄달의 <무당, 여성, 신령들>은 1970년대에 한국에서 몇년 동안 무당의 신딸로 살며 굿을 추적한 미국인 민속학자가 쓴 책이다. 이 책은 살아있는 생생한 정보로 인해 동아시아 무속 연구를 할 때 필수도서였음에도, 우리나라에는 2016년에야 번역되었다. 기본적으로는 논문이지만, 외국인의 눈으로 묘사되는 1970년대 한국 풍경과 굿의 모습이 생생하고 자세하며, 마치 <H마트에서 울다>처럼 우리에게는 평범한 것들이 외국인의 시선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책을 읽은 느낌을 나눠볼까요?

 _ 이웃블로거를 통해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논문인데도 재밌다고 해서, 마침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서 대수대명굿 같은 자료조사가 필요해 발제 책으로 정했다. 나는 재밌게 읽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_ 굿이 여성의례라는 것을 비롯해 책의 주장에 완전히 설득당했다. 마치 내가 현장에서 굿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읽었고, 어릴 때 굿판에 여자들만 있었다는 기억도 떠올랐다.

 _ 어려울까봐 걱정했는데 재밌게 읽었다. 대중문화에서 극적으로만 표현된 무속을 디테일하고 아기자기하게 묘사해서 좋았다. 무당은 운명적으로 타고 나서 신내림 받고 무당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무당도 많고, 무당이 직업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정신상담은 익명성이 기본인데, 굿은 서로 수다떨고 털어놓으며 감성을 건드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_ 쓰신 분도 대단하지만 번역하신 분들도 대단하다. 이런 연구방법론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무속을 원형 그대로 보전할 것이 아니라, 변형되더라도 현실에서 계속 하면서 이어지도록 해야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어떤 부분은 정보로 좋은 것이 많아 필사도 했다.

 _ 나는 모태신앙의 기독교인이라 이런 책을 첨 읽어본다. 거부감이 있어 약간 거리를 두고 역사서로 받아들였다. 이 책을 읽으며 기억을 떠올려보니 드라마에서 굿하는 장면에는 온통 여자들이었고, 남자들은 뒤에서 팔짱끼고 있었다. 무속에 대해 모른다고 하면서도 나에게 스며들어 있는 게 있구나 싶었다.

 _ 어릴 때부터 퇴마소설을 읽고, 학교 다닐 때 민속학 강의를 듣고, 할머니한테 들은 말도 있어서 무속의 세계는 익숙하지만, 외국인의 시선에서 굿을 학술적으로 쓴 건 처음 읽어봐서 신선했다. 예를 들어 이모나 고모 같은 말을 외국인의 시선에서 설명하는 부분 같은 것들이 신선했다.

내가 경험한 굿, 점, 목신동법 등 무속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_ 어릴 때, 엄마가 아파서 푸닥거리를 한 적이 있다. 여기 나오는 식칼, 쌀뿌리기 등을 했다. 신기하게도 푸닥거리를 한 후 엄마가 괜찮아지셨다. 또 책에 나온 것처럼 시렁에 떡 올리기 같은 것들도 엄마가 기본적으로 했던 것 같다. 제사는 일방적인 제의라면, 굿은 서로 소통하는 의례라는 생각이 든다.

 _ 할머니가 한복집을 하셨는데, 별채에 무당이 세들어 살았던 기억이 있다. 그 할머니가 화투로 점을 봐주셨다. 영화판은 영화 찍기 시작할 때 아직도 고사를 지낸다. 또 연예인, 제작자 등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점을 보러 다닌다. 이 영화 성공할까? 이런 것들이 다 돈이 걸려 있어 그런 것 같다. 

 _ 회사에 매주 출근하는 점쟁이가 있다. (이 부분에서 모두 빵터짐) 사장님이 친하게 지내는 분인데, 점을 봐준다면서 직원들이 회사에 불만은 없는지, 근황은 어떤지 체크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퇴사하고 싶어하는 직원들에게는 내년에 나가는 게 좋겠다는 식으로 계속 미루게 한다. 나에게 봄에는 '45살까지 사막 위를 혼자 걸어다니는 팔자'라고 했다. 근데 가을에는 '내년에 남자를 만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봄에는 45살까지 사막 위를 혼자 걸어간다면서요?"했더니 매우 당황하셨다. 이런 걸 봐도 점은 귀에 걸면 귀걸이, 목에 걸면 목걸이 같다. 

언젠가 친구와 함께 둘레길을 걷다가 굿하는 걸 본 적 있는데, 그 근처부터 숨이 차기 시작하고 기운이 달라진 걸 느꼈다. 그래서 빨리 걸어서 굿하는 곳을 벗어났다.

 _ 내가 굿을 경험한 적은 없고, 울엄마가 어릴 때 본 적 있다고 했다.

 _ 초등학교 때 친구가 무당딸이었는데, 그 친구네 집에 놀러갔을 때도 그 사실을 잘 몰랐다. 근데 엄마가 무당집을 어떻게 알아보는지 아냐고 하면서 대문에 대나무가 있으면 무당집이라고 했다. 그 친구네 집 대문에 대나무가 서 있었다. 

경매로 집을 사서 이사갔는데, 그 집에서 엄마가 암이 발병했다. 그래서 점을 봤더니 마당의 등나무를 뽑아버리라고 했다. 등이나 칡처럼 뿌리가 뻗어나가는 나무들은 집을 들뜨게 해 우환이 생긴다고. 그래서 등나무 잘라낸 기억이 있다. 이런 게 일종의 목신동법 아닐까?

 _ 우리집은 천주교인데, 할아버지가 편찮으신 어느 추석에 제사를 건너뛴 적이 있다. 원래 어른이 아프면 제사 지내는 거 아니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그날 밤 할머니 꿈에 조상 귀신들이 나와서 다들 부엌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제사를 안지내서 배고파서 그런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얼마 뒤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만약 그때 차례를 지냈다면 할아버지는 살아계셨을까?  

나의 신앙과 무속 신앙의 닮은 점 혹은 다른 점?

 _ 삼혼이라는 개념(영혼이 제사 위패, 무덤, 저승에 산재해 있다는 개념)이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똑같아서 놀랐다. (이에 대해 로렐 켄달이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했기 때문에 삼혼이 나온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다.아..그런거야?)

 _ 무속에서는 신에게 잘 하라고 하지만, 천주교에선 이웃에게 잘 하라고 한다. (이에 대해 그렇지만, 이웃에게 잘하는 건 택함 받은 결과이지, 결국 하느님께 택함을 받아야 천국에 간다는 반론도 있었다)

나는 냉담자이면서도 묵주반지를 꼭 하고 있는데, 이것도 일종의 기복신앙이 아닌가 싶다. 엄마와 여행하면서 유럽의 여러 성당에서 성령체험을 했다. 특히 바르셀로나 성당에서. 이를 이 책의 언어로 말하면 '트랜스'가 아닐까? 결국 단어만 다를 뿐 같은 현상이라고 본다.

 _ 나는 다원주의자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싫다. 예수만이 구원이고 나머지는 배척한다는 의미에서.

 _ 닮은 점은 '힘들 때 의지한다', '한풀이'라는 점. 기쁠 때 보다는 힘들고 슬플 때 종교를 찾기 때문이다. 무속도 마찬가지고. 다른 점은 문제 해결방식이다. 무신론자는 개인이나 지인과 함께, 종교인은 각 믿는 신을 통해, 무속신앙은 조상신이라는 한풀이 대상을 통해 해결한다.


이 책을 읽고 생각났던 영화, 책, 드라마가 있다면?

혁 _ 영화 [대무가]. 무속신앙하면 보통 [곡성], [량종] 등이 생각나지만, 이 책에선 흥으로 한을 풀어가는데 초점이 맞춰져, 무당을 코믹하게 현대판으로 해석하려 했던 [대무가]가 가장 떠오른다.

유 _ 굿할 때 며느리들에게 조상신이 빙의하는 장면 보면서 [82년생 김지영]이 떠올랐다.

효 _ 영화 [검은 사제들]이 뮤지컬로도 나왔다. 그 뮤지컬에서 굿 재현을 굉장히 잘 했다.

경 _ 영화 [곡성]

주 _ 드라마 [힙하게]와 [더 글로리]

매 _ 다큐 [파란만장]

재 _ 소설 [신비소설 무], 책 [무당과 유생의 대결], [조선을 홀린 무당 진령군]

그 외에 신령들은 왜 이렇게 욕심이 많을까라는 질문에 신령뿐 아니라 기독교도 마찬가지라는 답이 나왔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며, 기독교에는 십일조헌금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를 계기로 헌금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졌는데, 성당이 가난한 이유는 바구니를 돌리지 않고 미사 전에 함에 넣기 때문이라는 주장, 그래서 성당에서도 특별헌금은 따로 바구니를 돌린다는 썰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에 대해 다른 독서모임에서 들은 바를 첨언하자면, 신령들이 욕심이 많기 때문에 조선에 서구의 종교가 들어왔을 때 힘없는 백성과 여성들이 열광했던 거라고 한다. 이제까지 뺏어가기만 했던 신령 대신 베풀고, 만인은 평등하다고 하는 신이 들어왔기에 핍박 받으면서도 천주교가 널리 퍼지고, 기독교가 부흥한 것이라고.

사소한 거라도 내가 믿거나 지키는 미신이 있냐고 물었더니, 저녁에 손톱을 깎지 않는다, 머리를 북쪽에 두고 자지 않는다, 문이 보이게 눕지 않는다(그 과정에서 방문을 열어두고 자는 파와 문을 닫고 자는 파가 나뉘었다. 이건 마치 샤워할 때 슬리퍼를 신는 파와 맨발파가 나뉘는 것처럼 신기한 경험이었다.ㅋㅋ), 빨간펜으로 이름 쓰지 않는다, 다리 떨지 않는다, 문지방을 밟지 않는다 등이 나왔다. 이에 대해서는 다들 가정교육으로 인한 미신(혹은 생활태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책의 저자 로렐 켄달은 연고도 없는 동아시아의 작은 마을에 몇년 동안 거주하면서 용수엄마의 신딸로 지내며 굿을 조사했다. 이렇게 헌신한 경험이 있는지 물었을 때,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며 반성하는 파와 우리가 십수년 간 직장을 다니는 것, 글을 쓰는 것 등이 전부 헌신이 아니냐는 파가 나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신념에 반해 생계전선에 뛰어든(모모당 수행비서나 선거홍보를 한 경험) 과거를 고백하기도 했다. ㅋㅋ 

로렐 켄달은 한국 여성에 대해 '공적인 영역에서의 무력감과 사적인 영역에서의 강인함', '한국의 여성의례 영역에서는 신령이나 조상, 그리고 귀신 어느 하나도 친족의 경계선 앞에서 멈추어 서지 않는다'고 했다. 이 주장에 다들 공감하며, 남성들에게 유교적 제사가 있다면, 여성들에게는 굿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당, 여성, 신령들 (로렐 켄달 지음 | 김성례, 김동규 옮김 | 일조각)

2023년 11월 25일 AM 10:30

참석자 _ 유, 재, 매, 경, 주, 효 (혁: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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