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상 Dec 19. 2024

'질문을 완성한다'는 것의 의미

소설가 한강의 언어를 나에게 가져오니 느껴지는 것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질문을 완성하는 것'


노벨상 시상식을 앞두고 열린 작가 한강의 강연. 이 강연에서 한강은 그가 소설을 쓸 때 어떤 질문들에 몰두해 왔는지 돌아보며 주요 작품들과 그동안의 저작 활동을 회고합니다.


'질문'


작가 한강의 강연이나 인터뷰에서 참 많이 들을 수 있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한강은 늘 '질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난 10월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한강은 자신이 소설을 쓰는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저에게 소설들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어떤 것입니다. 이야기가 이어진다기보다는 질문들이 이어지는데요. 어느 시기에든 골몰하는 질문이 있고, 그 질문을 진척시켜 보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게 됩니다." - 매일경제 인터뷰 중 ('24년 10월)


이 설명은 이번 노벨상 강연은 물론, 시상식과 만찬 이후 열린 한국 기자단과 간담회에서도 이어집니다.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 노벨상 강연 중 ('24년 12월)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완성하는 것이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답을 한다는 것은 결론을 내리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질문이라는 것은 아직 진행형의 상태에 있는 것이고, 그 안에 복잡성이 아직 담겨져 있고, 그 안에 충돌이 있고. 그 상태를 그냥 끝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그 충돌된 상태를 끝까지 들여다보면서 그런 상태로 가볼 수 있는 끝까지, 질문이 끝까지 가보는 것이어서. 그러고 나면 이제 그 질문의 끝에 다다르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라서요. 답을 내렸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 - 노벨상 시상식/만찬 후 한국 기자단 간담회 중 ('24년 12월)


12월 11일 (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소재 출판사 '나투르 오크 쿨투르’에서 열린 내신 기자간담회 (뉴스1)


'질문을 완성한다'는 것의 의미가 뭘까?


질문을 완성한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질문을 했으면 답을 하는 것이 완성 아니었던가요? 질문을 완성한다, 질문의 끝까지 가본다는 개념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골몰했습니다. 도대체 질문을 완성한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우리는 늘 답을 찾는 것에 몰두해 왔습니다. 게다가 질문은 대부분 주어진 것이 많았습니다. 주어진 문제에 답을 잘 찾으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일할 때도 상사로부터 주어진 질문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질문을 받으면 어딘가에 있을 답을 찾는데 몰두하고 대안을 제시하거나 결론을 내려서 보고해 왔습니다.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내내 품고 살아가는 일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인생에서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하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요? 시험, 과제 등 답을 찾는 것이 목적인 일은 우리 인생의 한 부분에 불과한데, 우리는 인생 전체를 두고 늘 자꾸 답을 찾으려는 우를 범해왔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 속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와 질문을 마치 시험문제 풀어내듯, 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듯 답을 구하려고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삶이라는 것은 질문하고 답을 하는 것보다는, 풀리지 않는 질문을 내내 품고 살아가는 일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질문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일'이 꼭 소설가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도 이미 해왔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입니다.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라고 물으면 "무엇이다"라고 답해야 합니다. 반면에 "나는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라고 질문하면, 이 질문은 품고 끝까지 가볼 수 있습니다. '어떤'에 괄호를 치고 무수히 많은 단어와 의미를 집어넣어 보면서 살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작은 실험과 도전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질문이 완성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12월 7일(현지시각) 스웨덴 한림원 강연 (AFP 연합뉴스)


소설가 한강은 어떻게 질문을 완성해 나갈까?


다시 소설가 한강의 말을 곱씹어봅니다. 질문은 아직 진행형의 상태이고, 복잡하고, 그 안에 충돌이 있으니 그 상태를 끝까지 들여다보면서 가보는 것이라는 말에 다시 주목해 봅니다.


한강은 노벨상 강연에서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품고 있었던 질문이 바뀐 경험을 소개해줬습니다. 20대 중반부터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질문은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그리고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광주에 대한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고, 5.18로 희생된 한 젊은 야학교사의 일기를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품었던 두 질문은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한강의 질문은 그렇게 완성되었고, 질문의 끝에 다다르게 되어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한강이라는 소설가가 어떻게 질문을 완성해 나가는지 강연을 통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강의 언어를 나에게 가져오니 느껴지는 것들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영화의 첫 시작을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합니다.


"A work of art does not answer question, it provokes them ; and its essential meaning is in the tension between the contradictory answers." - Leonard Bernstein


"예술작품은 답을 주는 대신 질문하게 하며, 상반된 답들 사이에서 긴장을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 - 레너드 번스타인


소설가 한강이 제기한 이 모순 덩어리 같은 질문에 고민하였으니, 한강은 한강대로 예술가의 일을 한 것이고, 저는 저대로 독자의 일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반된 답들 사이에서 오가며 느껴지는 것이 많았고, 그 끝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정리해 봅니다.


처음엔 저건 소설가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말들을 나에게로 가져오니 이제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문제들, 모든 질문들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시급하게 답을 내야 하고, 실행해야 하는 순간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은 늘 그것만 있지 않다는 것.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는데 애써 답을 내려는 우를 범하지 말고 그 질문을 품고 이렇게 저렇게 애쓰면서 그 질문을 완성해 나가는 것도 나의 일임을 깨닫습니다.



ⓒ 이재상 2024



[출처]

1. 이미지 : 노벨상 페이스북 페이지 (표지), 뉴스1, AFP 연합뉴스 (본문)

2. 한강 매일경제 단독 인터뷰 [전문] : 바로가기 (매일경제, 2024. 10. 11)

3. 한강 노벨상 강연 (Nobel Prize lecture) [전문] : 바로가기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 2024. 12. 7)

4. 한강 노벨상 시상식/만찬 후 한국 기자단 간담회 : 바로가기 (MBC 뉴스 유튜브 채널, 2024. 12. 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