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생기기 전부터, 3개월동안 이름을 고민했던 팔불출 언니
며칠 전, 포털 사이트에서 '강아지 이름 종류'에 대한 인상적인 글을 보았다.
기억을 옮겨보자면 대략 이런 내용이었는데,
1. 스타류 : 프레디, 마돈나, 오드리, 지디, 제니, 빅뱅 등
2. 감정류 : 해피, 사랑이, 행복이, 기쁨이, 행운이 등
3. 곡물류 : 보리, 콩이, 호두, 깨깨, (도)토리 등
4. 음식류 : 초코, 우유, 푸딩, 콜라, 크림이 등
5. 자연류 : 하늘이, 바다, 구름이, 행성이, 별이, 달이 등
그럼 우리 강아지는 '앙뚜'와 '네뚜'(합쳐서 앙뚜와네뚜)니까 위인류인가?
아니다. 마리 앙투와네트가 위인은 아니니까 역사류인가 -_-;
실제로 강아지 이름이 다소 평범하지 않다보니,
"왜 강아지 이름을 그렇게 지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꽤 많아서 이번 기회에 썰을 풀어본다!
강아지를 데려올 수 없으니, 일단 이름이라도 지어둬야겠다!
대부분의 반려인들은 보통 반려동물이 생기고 난 다음에 이름을 정하지만
나는 좀 특이하게도, 강아지를 데려오기 전에 이름을 3개월이나 고민했었는데
절대로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과 오지랖이 넘쳐서가 아니라
부모님이 집에서 강아지 키우는 것을 결사 반대했기 때문에,
강아지를 데려오기 위한 타이밍을 기다리느라 시간이 너무나 -_-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강아지를 데려올 수 없으니까 이름이라도 먼저 지어두자.. 고 생각했었는데,
이모네 강아지였던 초코푸들 '별이(자연류)'가 자기 이름을 인지한 이후부터
식구들이 "오늘 별이 안 떴네." "요즘은 별이 안 보여." 이렇게 대화 속에 '별'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자기를 부르는 걸로 착각해서, 자다가도 일어나고 -_- 먹다가도 쳐다보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중에 우리 집에서 개를 키우면 절대로 일상에서 듣도보도 못한(!)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한 동물 조련 전문가(10년 전이라 누군지 기억 안 남..)가
"강아지 이름은 2음절 정도가 좋아요. 너무 길면 알아듣기 힘들거든요.
그리고 이름을 배우는 시기에 헷갈리지 않도록, 너무 흔한 단어가 아니면 더 좋겠죠."
라고 말하는 정보도 주워듣게 되고,
당시 나는 수능 언어/외국어 영역을 가르치고 있었던지라, 일종의 직업병(!)이 생겨 있어서
심지어 강아지 이름을 짓는데도 무의식적으로 적용이 되었는데, 예를 들면
단어에 울림소리(ㄴ, ㄹ, ㅁ, ㅇ) 가 들어가면 부드러운 느낌을 줌.
양성모음( 아, 오.. )이 음성모음 ( 어, 우.. )보다 밝고 명랑한 느낌을 줌. eg.졸졸 > 줄줄
그 당시에는 컴퓨터 자동입력기처럼, 이런 것들이 머리에서 자동분석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얼굴도 못 본 우리 강아지 이름은,
( 이름을 배우는 시기에 헷갈리지 않게 ) 흔하지 않고 -> 별이 덕분
( 길면 알아듣기도/부르기도 힘드니까 ) 2음절의 단어에 -> 동물전문가 덕분
( 부를 때 귀엽고 명랑한 느낌이 들도록 ) 울림소리와 양성모음 -_- 을 합쳐야겠다! -> 직업병 덕분;
그러던 중 아무 의미 없이 생각난 단어 조합(로또 번호 조합처럼..) 중 하나가 '앙뚜' 였는데,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동시에 입에 착 감겨서 '우리 강아지는 앙뚜'라고 결정해버렸다!
그 이후, 애견숍을 지나치면 괜히 '여기 혹시 앙뚜가 있나' 하고 쳐다보기도 하고,
심지어 강아지를 보면 '너는 앙뚜스럽다/앙뚜스럽지 않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대던 어느 날,
사람들이 흔히 인연을 만나면 후광이 비치고 그 사람만 보인다고 하던데, (BGM.데스티니~)
나는 그것을 인생에서 딱 한 번.
사람한테 느낀 것이 아니라 갓 태어난 강아지한테서 느꼈다.. -_-
충무로에 스쿠터를 정비하러 갔던 어느 날,
스쿠터 정비를 맡기고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주변의 수많은 애견샵을 구경하면서
인형보다 귀여운 작은 꼬물이들을 보면서 강아지뽕(?)에 취해있던 중이었는데,
우연히 길을 걷다가,
그동안 내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강아지(...-_-)를 만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애견샵에 잔뜩 있는 귀여운 꼬물이들이 '강아지 공장'에서 탄생했다는 것도,
충무로 애견샵에는 유난히 병에 걸린 아픈 강아지가 많다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앙뚜 역시,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던 강아지 중 하나였다는 사실도.
그 때는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