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삶을 흔들어 버린 인생 강아지와의 만남
몇 년 전 아빠가 급성 폐렴으로 중환자실에서 퇴원하고 1인실로 이동했을 때
환자인 아빠와 뚜뚜(강아지)가 바깥에서 접선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거나,
강아지가 쫓겨나지 않도록, 털 알레르기는 물론 비염과 아토피에 15년 간 시달리던 오빠가
아침 운동과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등의 에피소드를 들은 지인들은 깔깔 웃으면서 종종 이렇게 말했다.
너희 가족 진~짜 대단하다. 다들 원래 동물을 좋아하나 봐!
아니. 전혀. -_-
지금의 모습을 보면 예전 우리 집을 상상할 수 없겠지만,
사실 최초의 강아지인 앙뚜(포메/2008년생)는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로 입양되었다.
원치 않던 퇴직 후 집에 계시는 시간이 늘어난 아빠의 마음을 철 없는 자식이 온전히 짐작하기는 어렵다.
나 역시 무표정하고 말 없는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지만,
막내 딸이라는 포지션 덕분인지 그래도 내게는 '아빠의 온기'를 떠올릴 기억 몇 조각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오빠는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으로 칭찬 한 마디 건네준 적 없었던 아빠와 감정의 골이 깊었던 오빠는,
아빠가 식사를 하시거나 거실에서 TV를 보시면 방문을 닫고 들어가 아빠의 기척이 사라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런 오빠의 모습은 다시 아빠의 감정에도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엄마는 종종 나를 붙잡고 "집이 집 같지가 않아서 너무 힘들다"며 하소연을 하곤 했다.
마음 약한 엄마는 항상 문이 닫혀 있는 집, 사라진 대화, 삭막한 분위기를 못 견디겠다며 힘들어했고,
이후로 나는 닫힌 방문을 '가장 자연스럽게' 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백 가지가 넘게 생각했는데,
그 중 '작은 강아지가 집 안을 돌아다닌다면 가족들이 방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꽂혔던 것이 오늘날 옥수동에 팔불출 강아지 식구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었다.
사람이랑 짐승은 같은 공간에 머무는 거 아니다!!!
하지만 조심스레 강아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사람이랑 짐승은 같이 사는 게 아니다."라고 평생을 외쳐온 아빠를 설득하기란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빨래는 무조건 삶아 입힐 정도로 청결한 엄마 역시 '강아지를 보는 것은 좋지만 키우는 것은 절대 안된다'고 단호히 말을 잘랐다. 심지어 나는 강아지를 조금 무서워하는 쪽이었고, 강아지를 좋아하는 오빠는 설득에 힘을 보태기는 커녕 아빠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평소의 나라면 금방 포기했겠지만, 원래 대의를 품은 자(?)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
그 당시의 나는 강아지가 우리 집의 분위기를 바꿔줄 터닝 포인트가 되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집에 들어오면 방문을 닫아버리는 오빠가 작은 강아지와 함께 행복해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강아지=가족의 평화'라는 빅픽처를 이미 마음에 품은 나는 흑심을 품은 채 엄마와 아빠를 수없이 인터뷰했고,
아빠는 '강아지가 시끄럽고 냄새 나서'
엄마는 '강아지를 돌보고, 청소하고, 뒤치다꺼리하는 게 싫어서'
강아지 식구를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우리 집 식구가 될 수 있는 강아지는 조용하고 +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하며,
그 강아지를 공부시키고, 먹이고, 키우는 등의 모든 새로운 일상의 책임자는
엄마가 아니라, 나와 오빠가 되어야 할 것이었다.
이런 악조건들이 충만한 가운데도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거라고 결심을 꺾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의 내가 회사원이 아니라 프리랜서였기에 강아지를 돌볼 수 있고,
적어도 강아지의 의식주(?)를 책임질 밥벌이 정도는 할 수 있는 나이였다는 정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기는 커녕,
나는 누가 우리 집에 강아지를 데려오면 소파로 뛰어 올라가 도망칠 정도로 동물을 무서워했고
강아지를 제대로 안는 것조차 잔뜩 긴장할 만큼 '반려동물'에 대해 뭐 하나 아는 것이 없었지만,
적어도 '나로 인해' 우리 집에 오게 된 하나의 생명체가
다시 물건처럼 가게로 되돌아가거나, 이곳 저곳을 떠돌게 만드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책임감 정도는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