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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ti J May 15. 2016

콜롬비아, 당신의 뜨거운 채취를 나는...

당신의 사람에, 태양에, 비에, 파도에, 모래에...

난 사실 남들이 잘 알고 있거나 많이 가는 곳을 선호하지 않는다. 게다가 럭셔리나 편한 것과는 거리가 꽤 먼, 이상하리만치 불편하고 여정 또한 쉽지 않은 여행을 하는 편이다. 첫째로 생각해보니 쉬운 걸 싫어하는 희한한 병이 있다. 그다음으로는 복작복작 비둘기 떼처럼 모여 다니는 것을 싫어하고, 글쎄... 무엇보다 나에게 여행이란 것은 단순히 어디를 가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신성한 과정이다. 거창하지만 나와 장소만의 관계를 친밀하게 형성해가면서 그것을 '추억'과 '기억'이라는 것에 소중히 담아내는 작업이랄까.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겠지만 단순히 만나서 차 한번 마신다고 그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난 어느 곳을 가면 그곳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머물면서 천천히 알아가고 싶고, 경험하고 싶고, 느끼고 싶고, 새겨두고 싶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나는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뉴욕에 머물고 있던 방을 렌트해주며 여행 경비를 마련할 아이디어를 냈다. 돈이 모여지자 친구와 무작정 비행기표를 끊고 간 곳은 콜롬비아. 우린 오롯이 구글 트랜스레이터와 구글 맵, 그리고 분홍색 카우보이 모자에 모험 의지를 불사르며 용감하게 숙소를 잡고 버스를 타고 동네 사람들과 소통을 시도해보며 불편하지만 찬란한 모험을 시작했다.

 




1. 기억 하나, 사람...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지 본질이 아니다. 

콜롬비아는 운전하기에도 렌트를 하기에도 그리 친절하지 않은 나라이다. 그래서 우린 이곳저곳을 다니기 위해 종종 새벽 4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8시간을 넘게 이동을 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지옥이라 여겨질 수 있을 테지만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안데스 산맥과 색색이 변하는 주위 배경들은 졸린 눈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오르게 아름답고 찬란하다. 그 긴 여정 중에 마주친 사람들 역시 지루할 새가 없다. 마치 한 편의 느리지만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중간중간에 멋대로 멈추더니 길에서 마주친 다른 버스 기사와 유쾌하게 인사를 나누더니 내친김에 내려서는 치킨까지 먹고 운전대를 다시 잡고, 손님들은 그저 가만히 궂은 표정도 없이 기다려준다. 새벽에 우리와 같이 동승을 한 젊은 모자는 내내 고개를 떨구고 있더니 차가 흔들리자 손에 쥔 검은 봉지를 아슬아슬하게 번갈아가며 뜨끈하게 채운다. 나중에 버스에 오른 가족 일행은 갑자기 차를 세워달라고 하더니 내려서 숲이 우거진 곳으로 한참을 들어간다. 화장실이 급했나? 몇 분 경과 후 자기 몸채만 한 큰 나뭇가지 하나를 손에 들고 버스에 오른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람... 도무지 궁금해서 영어에 손짓 발짓을 동원해 물어보니 유칼립투스라고 한다.  눈치로 이해하기엔 약재로 팔 거라는 듯했는 데  그러고 보니 길가에 드문 드문 앉아서 꿀을 파는 상인들도 뇌리를 스친다. 이 곳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생계와 몸 사림이 느껴진다. 아무도 안 살 것 같이 안개만 자욱한 산맥 중턱에선 흙이 꼬질꼬질 묻은 옷에 등이 흠뻑 젖은 세 명의 농부가 버스에 오른다. 한 눈에 보기에도 고된 일을 막 마치고 오른 중년의 농부들은 주머니에서 때 묻은 굵은 감자들을 주섬주섬 꺼내 허기를 달래며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건가? 참 황당하고 이상한 광경들인 데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그때의 그 기억들이 굉장히 특별히 남는다. 앞으로 버스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여행을 더 해야겠단 생각마저 든다. 고생스러운 데 왜 버스를 타냐고 묻는다면 그곳에서 난 내가 여행하고 있는 그곳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버스'란 곳에서 관찰한 그곳 사람들은 8시간의 잃어버린 여정 동안 마치 내가 초대를 한 것처럼 버스를 타고 내리며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난 내가 머물게 된 곳곳 마다에서도 수많은 이야기들을 보고 들으며 내 여행의 깊이를 만들어갔다. 몇 번씩 들르며 친해진 빵집 주인아저씨, 다 같이 사진까지 찍어 가게에 붙여주신 아이스크림 가게 아주머니들, 서로 길을 몰라 같이 여행을 같이 하게 된 이들, 떠나는 날 새벽까지 일어나 따뜻한 도시락까지 챙겨준 숙박소 주인 요리사 다니엘까지,  그 모든 인연들과 만든 사소한 추억들은 나의 여행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다.  마음을 열면 언어는 참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사전 말고 마음을 챙기자.

   


2. 기억 두울, 태양.... 당신은 뜨겁고 찬란하다.

 8시간의 지친 여정 후에 맑은 하늘 아래 보이는 마을은 "Barichara". 작렬하는 태양과 어울리는 이 곳은 울퉁불퉁한 돌바닥과 고풍스러운 빨간 지붕들이 언덕을 가득 채운 과거 식민지 마을이다. 아기자기한 마을이라 사실 마을만 구경을 한다면 몇 시간 안에 걸어 다니며 다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수공예 작업을 하는 학교에선 공예를 가르치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여유롭지만 진지한 모습으로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마을 전체가 내다보이는 언덕 위 Santa Barbara 교회에선 소박하지만 그들만의 성스러움과 전통을 느낄 수 있다. 교회 계단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장렬하게 다시 올라야 할 언덕 위의 태양을 맞설 준비를 해 본다. 태양의 뜨거움과 눈부심에 얼굴이 차마 들리지 않는다. 그저 벌겋게 익어가는 발등만 쳐다보며 올라간 언덕의 끝에서 드디어 태양과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가장 가까워진 순간 고개를 펴고 눈에 보이는 것은... 마치 신에게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은 곳이다. 정면은 뻥 뚫려 태양과 하늘에 몸이 닿을 것 같다가도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비록 손에는 맥주가 들려져 있었고 내 앞엔 누군가가 풀어놓은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며 맘껏 사냥을 하고 있었지만 난 그곳에서 해가 질 때까지 맘껏 태양의 향기를 맡고 하늘의 기교를 관람했다.  


3. 기억 세엣, 비.... 만만하지 않은 그대가 좋다.


원래 비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불같은 태양이 살갗이 아플 정도로 달구다가 갑자기 찾아오는 장대비는 강아지가 눈을 맞는 것 마냥 즐겁다. 안덱스 산맥 꼭대기에 있는 커피농장을 꼭 가보겠노라고 동네 사람들한테 손짓 발짓 눈치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자기 집 뒷마당으로 안내를 한다. 말들이 묶여 있는 헛간 뒤로 그저 빡빡하기만 한 열대우림 중앙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보이는 길대로 쭉 올라가란다. 길이 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대로 뒤로 돌아 숙소로 가고 싶은 맘을 뒤로 하고 나무속에 몸을 사정없이 파묻혀 가며 난 이대로 이 귀신 숲 같은 열대우림에 갇혀 버리는구나 하며 공포의 모험을 이어가니 드디어 길이 나온다. 진짜 길, 바로 내가 알고 있고 내 눈이 뚜렷이 읽을 수 있는 그런 길이다. 대나무가 시원하게 솟아있는 매끈한 땅을 밟으며 신나게 걸어 들어간 커피농장에서 난 커피를 맛보며 한참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슬슬 어떻게 돌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또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진다. 옷이 금세 홀딱 젖고 물방울이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데 귀신 숲의 보이지 않는 그 길이 저승길처럼 느껴진다. 커피농장 주인한테 어찌어찌하여 사정 얘기를 하니 잠시 후 배가 넉넉하게 나온 까무잡잡한 아저씨 한 분이 몸집보다 작아 보이는 스쿠터에 앉아 우리를 쳐다본다. 수줍은 양해를 구하며 아저씨의 젖은 배를 목숨처럼 꽉 붙잡고 오른 우리는 장대비 속에서 비를 먹어가며 미친 듯이 노래를 불러대며 젖은 언덕을 내려왔다. 공포는 이렇게 날리는 거다. 


태양, 비,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이 곳, 그 명쾌하고 시원시원함이 좋다.  


4. 기억 네엣, 모래, 물, 하늘... 낭만이란

Tayrona 국립공원은 정류소에서 입구까지 가는 데에만 걸어서 한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사람으로부터 격리가 되어 보호가 철저히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텐트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기에 짐이 꽤 있었던 우린 결국 말을 타고 20분 만에 마법 같은 해변의 절경을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광대한 바다와 높은 파도, 누가 깎아 놓은 듯한 잘생긴 바위들과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높은 열대 우림은 바깥과 격리된 채로 이곳에서만 2박 3일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날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황홀했다. 그 규모 또한 어마어마해서 사실 이 곳은 며칠을 지내도 새로운 풍경을 보고 밟을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우린 하루하루 다른 곳에서 캠핑을 했는 데 그중 한 곳은 해변가에 해먹과 모기장만 갖춘 곳이었다. 여기서 잠을 어떻게 자나 했는 데 밤은 생각보다 포근했고 잔잔한 파도소리에 살랑살랑 바닷바람에 간지럽혀주는 모기장은 정말 나에게 낭만의 정의를 한 단계 세워 올리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다른 하루는 텐트에서 잠을 자는 데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면서 텐트가 찢어질 것처럼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 텐트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이렇구나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깼는 데 칠흑 같은 이 곳의 밤에서 텐트 밖으로 비추는 번갯불이 꽤나 근사해 보이는 거다. 그 날밤 나는 천둥 번개가 선사하는 우렁차고 장엄한 쇼에 너무 신이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낭만은 이런 거다...


가끔 반복되는 일상에서 내가 사는 세상이 무지하게 작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내 나이가 점점 앞이 아닌 뒤로 봐야만 더 아름다운 나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 겁도 난다. 늘 모험을 하고 싶고 세상과 교류하고 소통하며 살고 싶지만 점점 더 제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와 변명들이 늘어나는 걸 발견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기억들이다. 그래서 당신은 추억을 그냥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만들어 갈 의무가 있다. 꼭 그것이 여행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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