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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yyumijung May 25. 2022

현대의 신화, 디자인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에이드리언 포티, 허보윤 역


학문 발전에는 계보가 있다. 철학, 종교, 문학, 예술, 건축 등 이러한 학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디자인은 역사가 짧다. 18세기에 생성된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철학, 미술, 정치, 경제, 사회, 기술 등과 끊임없이 접변하며 빠르게 그 의미의 변화와 확장의 속도가 변화됐다.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Objects of Desire, Design and Society Since 1750』의 저자 에이드리언 포티Adrian Forty는 경제적, 이데올리기적 측면에서 디자인은 공장 내 노동 분화의 결과물이며[1], 사회적 취향과 제조 기술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1770년경 웨지우드 도자 공방의 미천한 모델러가 디자이너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2] 1830~40년대 제조산업이 기계화되었을 당시 부를 창출 하기 위해 제조업자들에게 디자인이 아주 중요했다. 하나의 디자인을 끝도 없이 많이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3] 이때 디자인은 엔지니어 관점으로 어떻게 합리적으로 좋은 솔루션을 빠르게 도출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이다.



최초의 불황 앞에서 자본주의 산업을 완전히 그리고 즉시 회복하기 위해 디자인은 제품의 미적 가치를 높이고 디자인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 체계도 구축되었다. 1차 세계대전 (1914~1918년) 이후 위생과 청결의 개념을 기반으로 산업디자인[4]이 본격화된다. 2차 세계대전 (1939~1945년) 이후 대량생산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대량소비 촉진을 위한 마케팅 관점의 브랜딩[5]과 산업 공학과 결합된 합리적인 시스템 개념의 다양한 디자인 ‘프로세스’가 탄생됐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1978년에 창립된 디자인 컨설팅 기업 IDEO가 디자인 서비스 혁신 방법으로 소개한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이다. IDEO의 CEO인 팀 브라운(Tim Brown)[6]은 ‘디자인 씽킹’이란 “소비자들이 가치 있게 평가하고, 시장의 기회를 이용할 수 있으며, 기술적으로 가능한 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디자이너의 감수성과 작업 방식을 이용하는 사고방식이다."라고 정의했다. 사람이 느끼는 필요를 충족시키는 호감도(Desirability for human)와 기술적 가능성(Feasibility for technology), 그리고 경제적 생존 능력(Viability for business)을 조화시키는 일을 의미한다.[7]



세계는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경제 부흥기를 맞이한다. 성능의 차별에 한계를 시간과 자본이 많이 투여되는 기술 혁신이 아닌 빠르게 소비자를 현혹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IT 트렌드를 선도한 애플(Apple)사의 창업주 스티브잡스(Steve Jobs, 1955~2011)는 1998년 아이맥을 시작으로, 2001년 아이팟, 2007년에는 스마트폰 아이폰 그리고 2010년 아이패드까지 모두 성공하며 애플을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만든다. 비평가들은 디자이너가 아닌 경영자가 디자인을 통해 파격적 성과를 이루어 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시작으로 경영자들이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고, ‘디자인 경영(디자인 매니지먼트)’이라는 학문이 생겨난다. 경영의 보조 도구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기능으로, 더 나아가 통합적 경영 수단으로 비즈니스적 언어와 사고를 연결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정보통신기술(ICT)[8] 발전으로 이뤄진 차세대 산업 혁명으로,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 혁명[9]과 함께 창의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네트워크 발달로 인해 고정 공간이 사라지며 탈()공간의 세상이 등장한 것이다. 스페인의 사회학자 마뉴엘 카스텔스(Manuel Castells)[10]의 저서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에서 ‘흐름의 공간’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는데, 이 공간은 인터랙션, 기술, 자본, 정보, 이미지 등과 같이 흐름 내부에서 작동하는 시간을 공유하는 사회적 실천의 물질적 조직을 의미한다. 그는 이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디지털 네트워크’라 통칭했다. 또 다른 특징으로 미국의 언론학자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11]이 언급한 기술적인 융합을 넘어 ‘상호 작용’의 융합이다. 이는 다양화, 고도화된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에 현대 소비 사회에 있어 중요한 경쟁력으로 떠오르게 된다.



거대한 심층 기반(Deep fundamental)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생각의 현행화를 기반으로 가치관은 액상화[12] 되고 사회는 나노화[13]가 된다. 생각이 자본이 되는 시대. 소비의 척도와 가치의 기준이 개인의 신념으로 자리잡게 된다.[14] 우리의 일상과 욕망 그리고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포티는 새로움을 수용하도록 만든 방법 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디자인이라고 주장했다.[15] 현실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는 디자인은 어떻게 변화될까? 사람들의 욕망이 ‘의미’있는 경험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본질적으로 인간 삶의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 기반으로 디자인의 의미와 가치를 정의한다.



“보통 사람들의 머릿속에 앞뒤가 맞지 않게 뒤죽박죽으로 들어있는 사회적 차이에 관한 생각들을 디자인은 단번에 명료하고, 구체적이고, 반박할 수 없는 형태로 표현한다.”[16]



무질서하고 불규칙한 소비자의 비 선형적인 감수성을 더 정교하게 해석하기 위해 소비자학, 심리학, 신경과학,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들과 디자인은 융합된다. 소비자들의 파편화된 신념과 관념을 물질과 결합하여 소비 지향 디자인을 제공한다. AI의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진화된 큐레이션 시스템을 통해 21세기형 ‘경험 선택하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지 않은 지금, 즐거운 불협화음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하이브리드[17]적 통섭(統攝, Consilience)을 위한 해석과 실행의 관점으로 디자인의 개념과 역할이 ‘기획’으로 확대되었다. ‘기획’은 어떠한 일을 꾀해 계획한다는 의미다. 디자이너가 기획을 한다는 것은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디자인 조직이 수행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일을 계획하고, 조직원들의 업무를 분장해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를 미리 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18]



디자인의 이론은 시기마다 변화했고, 디자인은 다양한 관점으로 각기 다른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며 우리 삶 속에서 함께 진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사실은 포티가 말한 것과 같이 디자이너 개인의 창조적 능력보다는 사회적 이데올로기, 관념, 가치관들, 즉 사회 자체를 담고 있는 것이 디자인이며, 그것은 사회적 관념들을 재생산, 배포한다는 것이다.[19] 디자인과 사회의 관계는 따로 양립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를 내재한다. 따라서, 디자인은 관념과 욕망의 물질적 실현이고, 성공적인 디자인은 관념과 신념들을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마치 연금술[20]과 같다.[21]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내포하는 방대한 의미로 인해 여전히 해석이 모호하다. 그러나 이러한 모호함이 디자인의 생존과 성장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역설한다. ‘존재’의 의미가 다른 물질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하이데거[22]의 관점은 21세기 디자인 개념 정립에 있어 유의미하다. 가치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분석들이 보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맥락 속에서 풍부하게 조망되어,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디자인’이 써 내려갈 신화를 예측할지도 모르겠다.










[1] 에이드리언 포티, 허보윤 역,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일빛, 2004, p.48

[2] 에이드리언 포티, 허보윤 역,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일빛, 2004, p.54

[3] 에이드리언 포티, 허보윤 역,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일빛, 2004, p.75 

[4] 산업에 의해 대량생산되는 공산품의 형태적인 여러 특질을 결정하기 위한 조형활동 

[5] 소비자로 하여금 상품을 이미지화 하기 위해서 광고 홍보 등을 통하여 지속적인 관리로 소비자들로부터 상품의 이미지만으로도 상품과 회사를 알리는 마케팅의 한 방법

[6] IDEO의 CEO 팀 브라운은 디자인 씽킹을 통해 세상 바꾸기를 실천하는 기업인이며, 『디자인에 집중하라』의 저자이다 

[7] [네이버 지식백과] 디자인 씽킹이란? (창의융합 프로젝트 아이디어북, 2015. 6. 10., 조준동) 

[8] 창조 경제 기반의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특히 최근에는 빅데이터, 모바일, 웨어러블이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더 나아가 사물 인터넷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결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물의 연결, 사물과 사물의 연결도 가능하게 한다. 창조의 가능성이 무한하게 열려 있다

[9] 2016년 6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Davos Forum)에서 포럼의 의장이었던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이슈화됐다. 1784년 영국에서 시작된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 ▷1870년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2차 산업혁명 ▷1969년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시스템이 주도한 3차 산업혁명에 이어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통해 실제와 가상이 통합돼 사물을 자동적·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상 물리 시스템의 구축이 기대되는 산업상의 변화를 일컫는다. 

[10] 마누엘 카스텔스(1942년 2월 9일~)는 정보화 사회,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세계화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사회과학인용색인의 2000-2014년 조사에서 그는 사회과학 학자 중에서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인용되었고 커뮤니케이션 학자 중에서는 가장 많이 인용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2년에는 "네트워크 사회에서의 도시와 세계경제의 정치적 역학에 대한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공로"로 홀버그상을 수상하였다.[2][3] 2013년에 그는 사회 분야에서 발찬상을 수상하였다. 

[11] 헨리 젠킨스(1958년 6월 4일 ~)는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교수이며 MIT의 비교 미디어 연구 프로그램의 공동 설립자이자 감독이다. 2013년에는 권위있는 Peabody 수상자들이 선정하는 이사회에 임명되었다. 미디어, 네트워크, 융합 문화 관련하여 십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12] 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북스톤, 2021

[13]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22,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22 전망>, 미래의창, 2021

[14] 신수정 외, <2022 트렌드 노트, 라이프스타일의 시대에서 신념의 시대로>, 북스톤, 2021 

[15] 에이드리언 포티, 허보윤 역,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일빛, 2004, p.17

[16] 에이드리언 포티, 허보윤 역,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일빛, 2004, p.81

[17] 그 자체의 특성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합한 것 이상을 실현해 ‘섞이고 연계하는 과정’을 지향하는 하이브리드는 일방적인 흡수나 동화를 지향하는 통합과는 다른 통섭(統攝, Consilience)의 개념이다. 융합하는 과정에서 해결책을 찾고, 이질적인 부조화를 보이는 요소들이 미적 기준을 넘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를 모색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18] 김문기, <디자인 기획과 전략>,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p.81ⅷ 

[19] 에이드리언 포티, 허보윤 역,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일빛, 2004, pp.304~305 

[20] ‘값싼 금속인 납의 성질을 바꿔 금을 만들 수 있다.’ 기원전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하여 이슬람 세계에서 체계화되어 중세 유럽에 퍼진 주술적 성격을 띤 일종의 자연학을 말하는데 비금속을 인공적 수단으로 귀금속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21] 에이드리언 포티, 허보윤 역,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일빛, 2004, p.273 

[22] 마르틴 하이데거 (Heidegger, Martin, 1889~1976)는 이성 일변도로 치닫던 서구의 전통적 형이상학을 뒤흔든 20세기 철학의 거장이다. 정치적 과오로 나치 협력자라는 오명도 함께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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