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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Jan 08. 2024

거미집(2023)

인생무상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거미집(2023)

감독: 김지운

러닝타임: 132분

출연: 송강호, 오정세, 임수정, 정수정, 전여빈....



미국 영화를 보면 특별한 날에 가족이나 연인이 거실 소파에 정답게 앉아 영화를 보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재밌는 점은 그들이 보는 영화가 최신 영화가 아니라 주로 고전 영화라는 점이다. 그중엔 흑백 고전 영화도 종종 등장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 영화들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이미 몇 번이고 보아서 내용까지 훤히 아는 그런 영화다.

그렇게 그들은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과 몇 번이고 보아서 내용까지 훤히 꿰고 있는 익숙한 영화를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인 '집'에서 또다시 시청한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곳에서 가장 가깝고 친숙한 사람과 함께 가장 익숙하고 안전한 것을 보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된 건지 아니면 영화 속 장치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서양 문화 중 하나인지는 모르겠다.

 

거미집은 영화 속 영화인 '거미집'과 그 거미집을 촬영하는 현장의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이 둘은 흑백과 컬러로 나뉘고 대사톤과 연기 또한 전혀 다르다.

영화 속 영화인 거미집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70년대 영화를 재현한듯한 억양과 표정으로 연기를 하고 촬영현장의 장면에서는 현실의 억양과 표정으로 연기를 한다.

분위기도 다르다.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은 공포, 스릴러, 배신, 욕망(그리고 깨알 같은 막장컨셉)등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지만 촬영 현장은 소란스럽고 분주하며 각자의 이익과 목표를 쫓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두 상황 모두 각각의 설정에 맞게 조금씩 긴장을 쌓아가며 서서히 결말로 치닿는다.


앞서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고전 영화씬을 들먹인 이유는 이 영화가 마치 그것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전 공포 영화의 모습과 닮아있다. 극 중 이민자의 섬뜩한 눈빛과 한유림의 속셈을 감춘 표정, 호세의 욕정과 우유부단, 그리고 오여사의 집착과 집념은 마치 흑백 드라큘라의 송곳니와 흑백 늑대인간의 변신 순간과도 같은 긴장과 공포를 준다.

그런데 이게 참 연출의 힘인 것 같다. 영화를 촬영하는 현장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전혀 그런 느낌이 나지 않지만 촬영과 편집을 거쳐 나오는 영화 속 흑백의 필름을 보면 느낌이 180도 달라진다.

장면의 농도, 소품의 위치, 줌인, 줌아웃등의 카메라 기술, 음향 효과, 배경 음악 등 무수히 많은 요소들이 한데 합쳐져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보면 당최 말이 안 되는 이야기건만 이걸 연출의 힘으로 납득(몰입)시켜 버린다.

영화 거미집을 보며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이처럼 촬영 현장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조금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과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촬영 현장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어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데만도 여념이 없어 그 속에서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챙길 여유 같은 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나마 호세만이 한유림과의 사적인 일 때문에 그를 챙길 뿐이다.

모두가 자신의 역할만을 하기 바쁘기에 촬영의 과정은 온통 불협 화음 투성이다. 하나가 잠잠하면 다른 게 터져 나오는 식으로 무엇하나 매끄럽게 흘러가는 게 없다. 마치 이제 막 악단을 구성한 초보 악단의 연주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그럼 이 악단들을 지휘하는 연주자는 누구일까? 그렇다. 감독이다.

아수라장 같은 현장의 소란함 중심엔 감독이 있다. 감독은 자신의 예술성과 흥행성, 그리고 공적이며 사적인 관계 속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며 때론 다독이고 때론 윽박지르며 현장을 지휘해 간다.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스텝도 배우도 제작자도 검열관도 모두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영화의 완성이다. 그러나 목적지는 같아도 그들이 가는 방향은 모두가 다르다. 그 다른 방향들을 가까이서 때론 멀리서 바라보며 조율하고 밀어내고 삭제하고 추가하며 모두를 한데 묶어 정확한 목적지에 다다르게 하는 것이 감독이다.

하지만 영화의 완성이 공동의 목적지라고는 하나 감독의 목적지는 또 조금 다르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김감독은 이미 다 만든 영화를 결말만 바꾼다는 핑계하에 실제론 완전히 다른 영화로 만들어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가 가고자 한 곳은 평론과 흥행을 모두 만족시키는 영화를 만듬과 더불어 자신이 가진 나약함에 대한 반론, 예술적 천재성의 확인, 과거의 청산 같은 개인적 목적들도 함께 포함된 곳이었다.


거미집은 센스 있는 영화다.

영화 속 영화와 영화 현장 두 가지 상황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보여주며 자칫 가벼울 수 있는 이야기를 가볍지 않게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풀어나간다. 그건 아마 영화 중간중간 끊임없이 들어가는 엇박의 대사와 상황 때문일 것이다. 그런 엇박들이 때론 긴장을 완화시키고 정감을 더해주고, 정감을 완화시키고 긴장을 더해준다.

이 영화의 또 하나 장점은 악인은 없다는 것이다. 관계 속에서 강자와 약자는 있지만 영화 속 어디에도 악인은 없다. 다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문공부의 국장까지도.


그런데 '거미집'은 무얼 얘기하려고 했을까?

영화 속 김감독이 말했듯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려 했을까?

집착과 욕심으로 결국 파멸로 이르고야 마는 그런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려 했을까?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인 집이 욕심과 집착으로 결국은 거미집으로 변해버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이 욕심과 집착으로 결국엔 허무하게 파멸해 버리는 그런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려 했을까?

아니면 가장 안전한 사람과 가장 안전한 고전 영화를 보는 가장 안전한 집이란 곳이 실은 가장 무서운 곳일수도 있다는걸 이야기하려 했을까?

아니면 극 중 이민자의 대사처럼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려 했을까?

(인생무상의 대사가 나온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글쎄.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어 했던 건 같다. 특히 감독의 고뇌와 역할이 어떤지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김지운 감독의 자전적 에세이일까? 스티븐 킹이 글쓰기의 어려움에 관해 소설로 얘기한 1408처럼 말이다.

극 중 평론가에게 무시를 당하던 김감독이 평론가들에 대해 이렇게 내레이션 하는 장면이 나온다.

"평론은 예술가가 되지 못한 자들의 예술가에 대한 복수다"

그렇지만 평론가가 적이 될 순 없다. 그들을 미워할 순 있지만 적으로 삼을 순 없는 것이다.

때론 평론이 편견이 될 수도 있지만 예술적 작품, 성공한 작품 역시 '평론'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감독은 평론가 까지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작품으로. 그리고 이것 역시 감독이 가져야 할 고뇌 중 하나일 것이다.

거미집엔 감독의 고뇌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중에 인상 깊었던 것 하나를 뽑으라면 김감독을 키워주었던 신감독의 대사일 것이다.

모든 일이 틀어져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절망할 때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난 신감독에게 김감독은 이렇게 묻는다.


"어쩌면.... 제가 재능이 없는 걸까요?"

이에 신감독은 긴 숨을 한 번 내쉬곤 대답한다.

"재능? 재능이란 게 뭐 별거 있나? 자신을 믿는 게 재능이지. 지금 자네 눈앞에서 흐릿하게 어른거리는 게 있다고 했지? 그걸 믿고 가. 그게 누구 딴사람 머리에서 나와서 어른거리는 게 아니잖아?......(중략).... 어차피 감독은 자네야!..(중략)... 마음의 소리를 들어봐...... 자신을 믿어!!!! 눠어아어어아아아~~~~~"


흠..... 그래 재능이란 게 뭐 별거 있나. 자신을 믿는 거지. 자신을 믿는 만큼이 재능의 크기인거지.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한다.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다. 긴장감을 주면서 숨쉴틈도 같이 준다. 초라하게 몰아가면서도 벗어날 구멍을 만들어 준다. 완벽해 보이면서도 허점투성이다. 우스우면서도 우습지 않고 진지하면서도 진지하지 않다.

사람은 복잡하며 복합적인 생물이다. 딱 이렇다 정의할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사람의 성향을 몇 줄 글로 파악하는 건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때론 그 몇 줄이 핵심을 집어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전부는 또 아니다. 그 복합적 생물이 또 다른 복합적 생물들과 얽혀있는 게 인생이니깐.

그렇게 본다면 영화 속 영화인 거미집의 결말은 참 딱 맞는 것 같다. 거미집이라니..... 유쾌하다.

나에게는 좋은 작품이었다.


영화 촬영이 모두 끝난후 보여지는 감감독의 뒷모습과 시사회 후 보여지는 김감독의 알 수 없는 표정....

........거미집의 거미는 감독일까? 관객일까?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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