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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Feb 19. 2024

2024년 02월 18일

쓰레기 버리는 날


"참 많기도 하다"


가득 찬 종량제 봉투와 재활용 쓰레기 봉지를 양손에 들고 수거장으로 향할 때 종종 그 양과 다양함에 놀라곤 한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찌 이리 다양하고도 많은 쓰레기가 나올 수 있을까? 하루 중 집에서 먹는 식사라곤 잘해야 한 끼고 쇼핑이나 장보기를 거의 않는데도 신기하게도 쓰레기통은 금세 금세 채워진다. 오늘도 쓰레기들을 들고 수거장으로 가면서 뭐가 이리 많이도 나왔는지 '참 많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산다는 게 어찌 보면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다. 먹고 자고 입고 마시고 움직이는 모든 행위에서 쓰레기가 생겨난다. 무엇이든 구매를 하면 일단 그 포장부터가 쓰레기가 된다. 먹는 것은 먹고 나면 아무리 조금이라도 쓰레기를 남기고 먹지 않는 의류나 공산품 역시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쓰레기가 된다. 가만히 있어도 체모는 떨어지고 움직이며 생긴 먼지는 쌓이고 모여 또 쓰레기가 된다. 설거지와 빨래 역시 쓰레기를 남긴다. 오염을 씻은 오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배수관을 타고 하수도로 흘러가고 배설물 역시 정화조로 모여져 오물 쓰레기가 된다. 그러니 산다는 게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양손 가득 선물 같은 쓰레기 봉지들을 들고 바깥으로 나서자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따스하고 축축한 공기가 계절이 바뀌었음을 말없는 말로 얘기하고 있다. 내리는 비도 대기의 먼지와 지상의 오물을 씻어 하수도로 흘려보낼 것이고 그것 역시 그것대로의 쓰레기가 된다. 그런데 이런 쓰레기들, 타지 않는 쓰레기와 타는 쓰레기, 재활용되지 않는 것들과 재활용되는 쓰레기, 이 모든 것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는 그것들을 종량제 봉투와 재활용 자루들에 담아 내놓으면 끝이지만 이것들은 다시 어디로 가서 어디에 존재하게 될까? 오수와 오물들, 행위의 마지막에 생겨나는 각종 부산물들 역시 어디로 가서 어디에 머무르게 될까?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태우고 매립하고 정화해서 각자의 자리로 보내질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어딘가엔 분명히 쌓이고 모여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쓰레기는 영원히 쌓이고 모이기만 것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언젠가 때가 되면 처음 곳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쓰레기가 최초로 곳은 어디일까? 쓰레기가 되기 전 쓰레기가 아닌 상태였던 물질들은 어디에서 처음으로 생겨났을까?

아마도 자연에서 왔으리라. 크게 보아 우주에서 왔을 것이다. 올 곳이라곤 그곳밖에 더 있겠는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든 아니든 그 시초는 모두 자연, 크게는 우주에서 생겨난 물질이다. 그렇다면 그 근본은 나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생명과 마찬가지로 혼돈의 공간에서 생겨났으며 형태를 변환했을 뿐 같은 곳에서 온 물질인 것이다. 그러니 돌아갈 곳 역시 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쓰레기들은 언젠가 때가 되면 최초 자신이 왔던 혼돈의 공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만날 것이다. 팔과 다리가 다르지만 다르지 않듯 쓰레기와 나도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경문의 말처럼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


봄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축축하고 따뜻한 공기도 여전히 말없는 말로 계절이 바뀌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사라진 건 아니라고 한다. 지난 계절은 다시 돌아갔을 뿐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 얘기한다. 봄비의 얘기를 들으니 쓰레기들이 좀 친숙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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