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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Apr 04. 2024

미운 꽃


때론 꽃이 미워 보일 때가 있다.

거리에 만개한 벚꽃들의 선명한 색상과 모양새가 징그러워 소름이 끼치기도 하며,

꽃나무 아래 잔뜩 모여 하하호호 즐거움에 도취한 수많은 사람들의 웃음이 마치 나를 조롱하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땐 당장에 꽃들로 가득 찬 거리로 달려 나가 나무란 나무들은 모조리 베어내고,

꽃이란 꽃들은 모조리 흩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엘리엇의 황무지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몸이 힘들어, 마음이 힘들어, 사는 게 힘들어

아주 가끔은 그럴 때가 있다.

꽃이 미울 때가 있다.





비가 참 많이도 오는 봄이다.

젖은 날이 계속되지만 낮은 조금씩 쉬지 않고 길어지고, 기온은 점점 따뜻해져 간다.

궂은날이 길어지면 종종 잊어버리곤 하지만 우리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맞이하는 날은 맑은 날이다.

어떤 비바람과 태풍이 불어도 결국엔 맑은 날로 돌아간다.

비바람과 태풍의 저 먼 뒤편엔 맑은 하늘이 항상 그렇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엔 힘든 날도 좋은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힘들지도 좋지도 않은 날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힘들지도 좋지도 않은 그 대부분의 평범한 일상이 인생의 맑은 날이었다.

힘들 땐 힘들어하고 좋을 땐 좋아할 수 있었던 건 내 대부분의 평범한 날들 덕분이다.


나도 꽃이 미워 보일 때가 있었다.

그때가 언제인지 기억은 가물하지만 그럴 때가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날은 알 수 없는 것이니.

만일 그때가 온다 하더라도 왠지 괜찮을 것 같다.

미움이 오면 여전히 힘들어하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훨씬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미움이란 지나가는 것이니.


해 질 무렵 일 때문에 들른 논산의 어디 즈음에서 맑게 개이고 있는 하늘을 만났다. 비를 지나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하늘은 아름다웠고, 빗망울을 머금은 봄꽃들은 빛을 받아 반짝이며 빛났다.


비 개인 하늘을 보며 내가 참 아름다운 세상에 산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마운 일이다. 살아오면서 그다지 잘한 것도 없는데 나는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면서 살아간다.

활짝 핀 꽃들을 보며 살아간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본 밤 벚꽃이 참 예뻤다.

올해도 꽃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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