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役事)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내어 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 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 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버리고 싶더라.
- 이상 '이런 시(詩)'
벚꽃이 나리 내린다.
거리와 도로와 산에 만개했던 연분홍의 꽃들은 피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기쁘게도 떨어져 내리고, 꽃이 떨어진 자리를 연두의 잎들이 채워나간다. 바람에 나부끼며 흩어지는 꽃들을 보며 어쩌면 벚꽃은 떨어져 내릴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바람에 떨어져 내리며 내년을 기약하는 꽃잎을 보며 나는 못내 아쉬움에 젖지만 곧 다가올 다른 꽃들과 무더운 여름도 생각한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그리움은 기다림이 된다.
시인은 사라진 돌 때문에 처량한 마음이 들었지만 목도들이 큰 길가에 내어놓은 그 돌은 너무 커서 누군가가 가져갈 수도, 치워버릴 수도 없다. 돌은 사라진게 아니라 시인의 가슴으로 옮겨갔다. 실은 시인의 가슴을 떠난 적도 없다. 가슴에 두는 것 외엔 어쩔 도리도 없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떤 돌의 시선에 부끄러워 시를 찢는다 해도 아무 소용없다. 종이 하나 찢은들 커다란 돌은 꿈쩍도 하지 않을 테니.
그래서 그는 그저 홀로 기다린다.
혼자 꾸준히 생각하며, 내내 어여쁘길 바라면서.
헤어짐과 그리움과 기다림은 결핍이다.
결핍은 부족함이요, 부족하니 채우려 한다.
어떨 때는 그 부족함으로 인해 마치 내 온 삶이 끝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부족함이 나쁜것은 아니다.
부족하기에 살아가고 부족하기에 겸손하며 부족하기에 사랑한다.
나를 넘어서 사랑하고 오로지 상대의 안녕만을 바랄 수 있다.
상대의 안녕을 바라지 않는 사랑이 어찌 사랑이겠는가.
부족함은 여백이다.
채워지지 않는 여백이 있음으로 우리는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아쉬움이 남아야 다음을 기다릴 수 있고 부족함이 있어야 나아질 수 있다.
완전함에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다.
부족함은 결코 나쁜것도, 잘못된것도 아니다.
우리가 고난한 일생을 살아갈 수 있는 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딘가 부족하고, 무언가 아쉬웁고, 모자라다는 생각이 든다면 인생을 참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그리움과 기다림도 좋지만 실은 나는 황동규의 그리움과 기다림이 조금 더 좋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리운 편지'의 화자는 언제인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그칠날이 있음을 믿고 고요히 기다릴 뿐이다.
그 속엔 어떤 바람도 조건도 없다.
다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할 뿐.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내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