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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Mar 19. 2019

이런 자발적 고립이 좋다.

이러려고 귀농했어요.

귀농하고 얻은 수확 중에 하나는 빗소리와 눈이 녹아 떨어지는 소리를 귀신같이 구별할줄 알게 되었다는 거다.

나 역시 귀농하지 않았다면 이런 '변별력'이야 살아가는 데 하등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렇지 않다.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빗소리는 미련없는 소리다.

주룩주룩 뭔가를 죄다 씻어내겠다는듯한 소리다.

그러나 눈이 녹아 떨어지는 소리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녹아 없어지는 현상을 그대로 소리가 담고 있다고나 할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이것만 구별하는 게 아니다.

눈오는 날의 냄새와 비오는 날의 냄새가 다름도 터득했다.

이런 터득의 속도로 본다면 귀농 20년차면  득도의 경지에 올랐겠지만 말짱 도루묵이다.


다른 곳에 비가 온다고 난리다.

천둥도 치고 번개도 친다고 할 때, 이곳은 소리없이 눈이 내렸다.

어찌나 펑펑내리는지 봄기운이 돌던 산골은 나무마다 크리스마스 카드 풍경이 되었다.

첫눈이 오는 것처럼 봄눈도 설렌다.

아마도 그것은 겨울 끝 봄 시작이라는 버전으로 있다가 갑자기 눈이 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봄눈이 오니 집에 있을 수 없어 검정 고무신에 빨강양말신고 밖에서 한참을 놀았다.

이미 눈은 차가 못다닐 정도로 쌓였고, 우리 부부는 눈을 치우지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차가 다니도록 저 아래 다리결까지 죽으라 눈삽을 휘둘렀겠지만 그대로 두었다.

이유는 단 하나, 이런 고립이 좋아서다.


언젠가는 이런 상황에 정전까지 된 적이 있었다.

금상첨화였다.

밖에는 눈이 쌓여 고립되고, 정전이 되니 벽난로의 빛과 촛불로 어둠을 누그러뜨리고 그 고요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

내가 귀농하여 이 깊은 산중에 살게 된 것에 거수경례를 붙이고 싶다.

남편이 귀농하자고 했을 때 괜히 눈에 흰자만 보이며 째려봤구나' 하고 후회했다.

내일 외출계획이 있었지만  다음 날로 미루기로 하고 눈을 치우지 않았다.

 

우리는 밖으로 밖으로  실핏줄처럼 뻗어있는 세상과의 관계에 치여 사느라 성할 날이 없다.

그것을 잠시라도 끊으면 큰 일이 날 것처럼 불안해 한다.

그러나 가끔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 자발적 고립의 시간을 갖는다면 곤죽이 되는 팍팍한 삶이라도 마음에 선홍색 맨드라미 물이 들지 않을까.

산골살이하면서 마음에 곰팡이가 피지 않는 것은 이런 고립 덕분이다.


지금 통창밖으로는 앙고라 스웨터처럼 푹신푹신한 눈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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