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4일 일요일 날씨: 춥다고 했어요
나는 빨래 개기를 좋아한다. 꼭짓점을 살려 갤 수 없는 수건인데도 가상의 꼭짓점을 기어코 창조해 접는 걸 즐긴다. 허벌레한 수건 한 장이 단정해지면 나까지 덩달아 단아해진다.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두면 기분이 좋다. 기분 좋고, 즐기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 통장에 월급이 꽂히는 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실컷 놀았을 뿐인데 돈까지 주네.’
아주 오래전, 까마득한 옛날에, 나는 8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마냥 꽃길은 아니었다. 싫은 일을 무조건 잘 해내야 했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신났다. 특히 강의. 환호성이 터져 건물이 흔들렸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강의 평가 점수가 5점 만점에 4.95점이었을 때는 황홀했다. 성과 측정, 외적 보상, 보상 지급은 물론 내적 보상까지 만족스러운 세계. 회사가 고마웠다.
그런데 살림은, 그러니까 빨래 개기는, 외적 보상이 죽염 한 톨만큼도 없다. 까놓고 말해서 어마어마한 시간을 죽이고,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일이다. 수건을 세탁기와 건조기에 넣었다가 빼서 봉다리에 쑤셔 넣고 써도 아무 문제가 없을진대, 나는 왜 굳이 정성스럽게 접는가. 한심하다.
나는 비효율을 선택한다. 이유는 단 하나, 내적 보상. 서랍을 열었을 때 각 맞춘 팬티가 줄 맞춰 참하게 앉아 있으면 참 곱다. 흐뭇하다. 내가 잘 살고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이게 뭐라고. 이 따위가 나를 구원해 버린다. 그러면서 또 어이없다. 구원치고는 너무 사소하고 너무 보통이며 너무 일상적이잖아.
이게 바로 나의 지독한 문제다. 돈 한 푼 나오지 않는 살림을 좋아한다는 거. 남편도, 친정 부모님도, 시댁 부모님도, 심지어 나조차도 전업주부로 살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돈을 벌고 싶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런데도 이 매력적인 살림을 버릴 수 없다. 무급 노동에 마음을 빼앗겼다.
오늘도 수건을 개면서 생각한다. 내가 수건을 개서 서랍 안에 착착착 올리면 남편이
“우와. 5점 만점에 5점이야. 아니, 100점이야.”
라고 말해준다면 좋을 텐데. 수건 한 장당 10원이라도 내 계좌에 꽂히면 더 좋을 텐데. 살림은 가정의 현금흐름을 지키는 일인데, 그 현금흐름에서 늘 내 이름은 빠진다. 물론 안다. 외주를 맡기면 돈이 나간다. 내가 직접 하면 돈이 안 나간다. 손익계산서로는 비용 절감이다. 하지만 절감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통장에 찍히지 않는다. 내 마음은 자꾸만 ‘입금된 돈’만 돈으로 친다.
내가 원하는 건 비용 절감이 아니라 소득 창출이다. 전업주부로 살면서 ‘당신이 한 일은 충분한 값이 있다.’라는 문장을 돈으로 받고 싶다. 남편이 입금하면 되지 않냐고? 노노노. 그건 이 주머니에서 저 주머니로의 단순 이체다. 보상이 아니다.
나는 돈이 안 되는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몹쓸 사랑 때문에 돈이 되는 일을 얼마나 미루고 있는가.
비싼 밥 먹고 개소리를 많이도 하누나.
그래도 나는 빨래를 훌륭하게 갤 것이다.
오늘의 단정함이 낸중의 나를 단단하게 해주리라 믿는다.
<대차게해봄>
그래도, 살림
아무튼, 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