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에 처음으로 친구와 소주잔을 나눴다. 소주잔의 80퍼센트쯤까지 채우는 게 미덕인 줄 알고 신중에 신중을 가해서 술을 따르다 결국 술이 넘쳐 친구 손에 흘렀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소맥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355ml 맥주잔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셨다. 이 둘을 합쳐 넣어도 흘러넘치지 않으니 참 이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월 15일에 자취 계약이 끝나자마자 16일에 취직을 했다. 작은 온라인 언론사에 편집기자 겸 에디터로 들어갔다. 정확히 5일 만에 결심했다.
"X발, X 됐다. 이직해야지" 기자 혹은 에디터가 된다 해도 내가 쓰고 싶은 기사는 거의 쓰지 못했다. 나는 그게 참 스트레스였다. 2월 16일부터 3월 16일까지 평일은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0시 30분에야 잠을 잤고, 주말에는 졸업여건을 맞추기 위해 토익 공부를 해야 했다. 영화나 책은 거의 꿈도 못 꿨다. 나는 살을 빼야 했으며 동시에 돈을 벌어야 했고 동시에 공부를 해야 했다. 그래서 최근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참 많이 찡찡거렸다. 내가 원하는 글을 못 쓰니(쓸 시간도 없으니) 인스타에 글을 배설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불안장애 약을 1알 늘리고, 공황장애 약은 맥시멈의 2배로 늘렸다.
그런데 3월 28일 토익시험을 잘 치르고 집에 오면서, 이토록 행복한 때가 있었나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놀랬다. 내가 왜 행복해하는지를 몰라서. 지금까지 나는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소주잔에 담으려 했다. 결국 소주잔은 50ml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소주잔은 넘치거나 깨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내가 마주한 한 줄기 빛, 또는 즐거움이란 건 맥주잔이었다. 오늘 치킨 먹고 자다가 일어나 구토를 하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기분 좋게 운동을 했다.
장황하지만, 요는 결국 그릇을 바꾸는 것이 답이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어떤 직업적 성취감일 수도, 좋은 영화나 책 한 편일 수도,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종류가 어떻든 나는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옮겨 담을 잔을 찾아냈다. 참 다행이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