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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달 Apr 03. 2019

교직원일기1: 교직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

1. 교직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

얼마전 내 친구 A에게 A의 친구인 B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B는 전형적인 요새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에는 남들 다 다닌다는 대기업에 지원했다. S사며 L사며 은행이며 직종 불문 알고 있는 회사라면 모조리 지원을 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세상은 녹록치 않았다. 수십 번을 떨어진 이후에 겨우 합격 통보를 받은 곳은 모 건설사였다. B의 어머니는 친구들에게 B의 취직 사실을 자랑했고, B는 굴지의 대기업 건설사에서 앞으로 커리어 우먼으로 커나갈 자신의 모습을 잠시나마 꿈꿨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내내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취직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앞만 보고 달려온 B는 드디어 한숨 놓나 했는데 그게 그렇지 않았다. 생각보다 일은 거칠고 힘들었다. 신입사원 교육 같은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신입사원 교육 때 배운 것은 실제 업무의 백분의 일도 가르쳐주지 못했으며, 실제로 업무를 하는데 필요한 각종 지식이나 스킬은 눈치코치로 배워야 했다. 그런데 더 어려운 것은 업무보다는 인간관계였다. 상사의 기분을 맞춰주고, 회식 장소를 잘 정하고, 눈치있고 센스있게 사무실의 막내가 되는 것이 B가 배웠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었음을 B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게다가 취직만 하면 휴식도 푹 취하고, 주말마다 교외로 놀러도 다니고, 여름마다 휴가도 가야지 생각하며 모든 것을 다 공부와 취업준비에만 올인했는데 취직을 하고 나니 그럴 시간이 아예 없었다. 평일에는 야근을 하고 집에 와서 씻지도 못하고 쓰러져 자거나, 회식을 하고 술이 취해 집에 돌아와 다음날 술도 덜 깨 채로 출근을 해야 했고, 주말에는 그나마 출근을 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집에서 잠에 취해있기 마련이었다. 학생 때는 스스로 포기했던 기회들이 이제는 돈과 맞바꿔지고 있었다. 통장에 돈은 쌓여갔지만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자신과 성별이 같은 여자 상사들이 건강상의 문제로, 육아 문제로 커리어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고 결국 B는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었다.



B는 그 이후에 공무원 시험을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몸이 아파가면서까지 공부를 한 결과 B는 공부한지 1년 반만에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합격하기 위해 점수컷이 낮은 지방으로 원서를 냈고, 그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다 됐다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직업에 퇴직 후에는 연금도 받을 수 있고, 이전 회사만큼 야근이 많거나 힘들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B는 다시 퇴사를 준비하고 있다. 남들은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마카롱 만드는 기술을 배워서 마카롱 가게를 차리는 것이 B의 새로운 꿈이 되었다. 쥐꼬리만한 월급, 동네북처럼 매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겪는 수모, 생각보다 더 많은 업무량, 게다가 친구 한 명 카페 하나 없는 시골 생활이 B에게는 더없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것을 위해 내가 그 많은 공부를 하고, 월급 많이 주는 회사도 때려치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나?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나 또한 B의 마음을 백분 이해한다. 내 동기들 중 대부분은 대기업을 다니다가 이직한 경우이다. 다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고 일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신의 직장이라는 교직원이나 되어볼까하고 이 곳에 온 것이다. 하지만 이 곳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월급은 쥐꼬리만하고, 생각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특히나 업무 범위가 엄청 광범위한데, 보통의 회사에서는 한 부서 내에서 자신이 담당하는 일이 바뀌는 반면 학교에서는 일년에 두 번 있는 인사철마다 자신의 업무가 180도 바뀔 수도 있다. 심지어 현재 나는 학사, 교무, 장학, 학생서비스, 교원서비스, 재무회계 를 모두 담당하고 있다. (하하하)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아무도 나의 업무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은 한 부서에서 계속 일하며 승진을 하게 되니 신입직원이 모르는 일이 있다면 자신의 사수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는 그런 게 없다. 내 전임자는 이미 다른 부서로 발령나서 새로운 부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 분 또한 갑자기 난 인사이동의 피해자이다. 제대로 된 인수인계서는 커녕, 자신 또한 인수인계를 채 하루도 받지 못하고 새로운 자리에 앉아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전화 문의를 응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팀의 과장님, 차장님, 팀장님이라고 해도 내가 하는 일은 전혀 모르신다. 오히려 내가 맡은 일을 그분들께 여쭤보면 '왜 나한테 물어봐?'라는 표정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일단 새로운 부서에 가면 이전 자료를 뒤져보고, 이전 공문을 뒤져보고, 각종 유관부서에 연락해서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정말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통화를 수십번 하며 알아서 업무를 배워야 한다.



게다가 교직원은 갑,을,병, 정 으로 치면 계 수준이다. 학생, 학부모, 교수 모두에게 을인데다가 나 같은 아직 어린 직원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을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의 모든 중요한 결정은 모두 교수님들이 하는데, 그것을 직접 처리하고 시행하는 것은 행정직원의 몫이다. 그렇다보니 불합리한 결정에 대한 학생들, 학부모님들의 불평불만은 모두 행정직원들이 처리하게 되며, 하물며 교수님 한 분이 사회적으로 비판받을 만한 발언을 하더라도 욕을 먹는 것은 그 교수님 소속 과의 행정 직원이다. 그래서 교직원들은 늘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하루에도 많으면 몇십통씩 전화와 이메일로 문의가 들어오는데, 듣도보도 못한 신박한 문의도 있지만(저희 아이가 중국어 과외를 구하고 싶은데 학교에서 알선해주실 수 없나요? 학교 홈페이지에 과외 선생님 구한다는 공고를 못 올려주시나요? 왜 못올려 주시죠? 그러면 요즘은 제일 좋은 과외 알선 사이트가 어디인가요? 따로 추천하실 만한 학생은 없으신가요? 옛날에는 학교에서 그렇게 해줬는데?) 보통은 같은 문의를 100명 중 98명이 하기 때문에 마음이 거칠어진다. ㅠㅠ 전화해서 운을 떼는 순간 부터 무슨 질문을 할지 예상 가능해지고, 이미 같은 답을 297번쯤 했기 때문에 더 진심으로 친절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서비스직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이게 어떤 느낌인지 이해할 것이다.



그러니까 교직원이라는 직업은 단순히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싶어서 결정해서는 안되는 직업이다. 물론 대기업 주요부서와 비교했을 때는 야근의 빈도나 업무의 강도가 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자신이 어느 부서에 발령 받느냐에 따라 천차 만별이며, 인사팀이나 재무회계팀에 발령 받는 순간 주말도 명절도 없어질 수 있다. (최고봉은 아마도 입학처) 게다가 사람 대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면, 민원인들을 처리하는 것이 싫다면, 교직원을 하고자 하는 생각은 절대 하면 안된다. 나 또한 대학생 때 학교 행정직원들이 왜 그렇게 불친절한 것인지에 대한 욕을 친구들과 많이 했었던 것 같은데, 이 자리에 있어보니 그들이 이해도 간다. (물론 불친절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최대한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친절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서 얻은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직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인내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어느 순간에도, 그 어느 부서로 발령이 나도 일단은 참을 것. 나의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 과외를 알선해 달라는 얼토당토 않은 문의에도,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할 것.



역시 세상에 공짜로 버는 돈은 없다는 것이 인생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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