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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스텔라C Nov 16. 2021

야, 나랑 결혼 안 할래?


     

영이에게.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타로카드 점을 보았지. 뭐 그냥 재미로.  요즘 내가 이따금 고민하곤 하는 '찔러볼까 말까'에 대한 주제였지. 답은 '찔러보거나 말거나'  51% 정도의 긍정적인 답이었으니  찔러봐도 그만, 안 찔러봐도 그만이었어. 나이와 주름에 반비례하여 열정이 급속도로 하강하고 있기 때문에, 안 찔러볼 공산이 되려 큰 그런 답이었지.  '그래도 한번 찔러볼까?' 후배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러니까 8년 전쯤의 이야기가 생각났어.


그가 누군지 영이 너는 알 것 같아. 아니, 아마 알 거야. 기억하고말고. 그게 8년 전의 일이고, 그때 이미, 내가 그와 친구로 지낸 지 8년쯤 되었을 때였지. 나는 다른 친구를 만나면서도 항상 한편으로는 나의 운명적인 사람이 그 이길 바랬어.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너무나도 빛이 나서, 나는 그저 친구라는 안전한 장치 속에 숨어 있었지.


그러니까 8년 전 11월 어느 날, 뭐 그런 친구가 하나 있다고 난 선배에게 얘기를 했었지. 선배가 말했어.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느냐고. 그러니까 그렇게 숨기고 있지 말고, 한번 말해보라고. 그리고, 아니면 말면 되지 않냐고, 괜히 혼자 숨기면서 다른 관계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채로 있기엔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 그리고, 8년이면 오래 기다렸지도 싶고. 무엇보다. 나도 한번 말해보고 싶었어. 그래서, 나는 바로 공중전화로 갔지. 내가 원래 이런 일에는 망설임이 없거든. 그가 전화를 받았지, 난 멈추지 않고 말했어.


 ", 나랑 결혼  할래?"


인사도 없이. 그때나 지금이나 골 때리는 면은 철철 넘치거든. 그래도 그렇지, 명령형( 결혼해!), 청유형(결혼하자!)도 아니며, 하다못해 결혼할래도 아닌 결혼'안'할래는 도대체 뭐야.


그가 짧게 웃고 대답했어.


"싫어"


어, 이건 아닌데.. 순간 창피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한, 그리고 나도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었던, 그의 대답이 가볍게 날아왔지. 그래서 난 비명처럼 말했어.


"?"


그가 말했어.


"선약이 있거든"


그렇지. 생각해보니, 그에게는 열 살쯤 어린 여자 친구가 있었지. 그가 나에게도 몇 번 보여준 여자 친구였지. 열 살 어린 그의 여자 친구가 그에게 반말을 할 때면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었거든. 난 무조건 빨리, 지금, 당장 고백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의 여자 친구조차 잊고 있었던 거야.

그가 다시 말했지.


"혹시,  선약이 깨지게 되면, 너한테 연락할게"


수화기를 놓고, 내가 깨달은 교훈이 있다면,내가 정말 그를 갖고 싶었다면 난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나는 팔 년을 기다렸으면서도, 몇일을 혹은 몇 시간을 몇 분을 기다릴 수 없었던 거야.  그리고, 남녀 간에도 좋은 친구가 분명히 있는데, 지금은 잘 알겠는데, 나의 욕심에 눈이 멀어, 난 좋은 친구 하나를 잃었다는 거고. 왜냐하면 나의 프러포즈에 '싫어'라고 말한 녀석과 계속해서 친구가 될 수는 없었거든.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면, 나는 그냥 찔러나보는건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어. 찔러볼 거면 '제대로' 찔러봐야겠다고.


영아, 이젠 누군지 알겠니? 근데 그 자식 열 살 어린 여자 친구랑 찢어졌다고 하던데, 왜 나한테 연락 안 하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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