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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사 Apr 28. 2024

생각해 보니 나는 틀이 없는 인간이다

규칙과 루틴 만들기

영어 표현에 Think outside the box 란 말이 있다. 박스, 즉 틀 안에 갇혀있지 말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ADHD인들에겐 이 박스가 애초에 없다는데.


맞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매우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그랬고, 신기하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늘 인지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것들도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불륜이라는 건 어쩌면 인간의 본능에서 오는 것 아닐까 싶었다. 사랑과 전쟁 같은 법정 드라마는 떨려서 못 보면서도 말이다.


몇 년 전 나와 남편은 발리에서 한 달 동안 겨울을 보냈다. 북부 해변 마을에서 머물렀는데 그때 처음 만나게 된 한국 언니랑 둘이서 발리 동부 여행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가기 싫대서 혼자만의 시간을 주고 말이다.


그 얘기를 들은 시어머님이 깜짝 놀라셨다. 혹시 살인자이거나 위험한 사람이라서 내가 납치라도 당하면 어쩌냐고 걱정하시면서 말이다.


자, 여러분은 기질의 양 극단에 서있는 고부를 보고 계시다. 기질검사를 해보니 나는 자극추구가 100점, 위험회피가 2점이었다. 어머님은 정 반대편에 서계시리라.

행히 언니는 살인자가 아니라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학교 선생님이고 발리에는 영어도 배울 겸 봉사활동을 하러 오신 거라 했다.


사람 인연이 참 신기한 게 우리는 그다음 해에도 우연히 제주도에서 만나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 갈 곳이 없었으니 당연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인연이라 생각하겠다.)


언닌 마치 내가 참 개방적이고 편견이 없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두 번밖에 못 봤는데 바로 이렇게 간파당하다니.


물론 이러한 개방성과 수용성에는 장점들이 너무 많지만 극명한 단점이 존재한다.


틀이 없다는 건 규칙이 없다는 의미고, 규칙이 있어도 따르기 힘들다는 것이기에. 내가 루틴이랄 게 없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극단의 무계획형 인간에 매일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엄마로서, 프리랜서로써, 크리에이터로써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규칙과 루틴을 만들었다.


1) 아침 루틴

일어나자마자 양치와 약 먹기 등등. 이미 공유한 바 있으니 앞편을 참고하기.


2) 저녁 루틴 및 하루 수면 시간 지키기

저녁 루틴은 참 지켜지지 않지만, 수면은 못 잃는다. 모든 ADHD 전문가가 강조하는 것이 수면이다. 평소엔 7~8시간. 그리고 번역이 과하게 밀려 있더라도 우선 조금이라도 자고 일어나서 시작한다.


3) 식단과 운동

나는 바삼크루라는 온라인 피티를 주기적으로 받는다. 바삼 선생님께서 가르쳐주는 식단과 운동이 나와 너무 맞아서 거의 종교처럼 받들고 있다. 참고로 이 식단과 운동으로 임신 때 찐 30kg을 다 빼고 3kg을 더 뺐다.


4) 주말 루틴

일요일은 무조건 정리의 시간이다. 빨래를 돌리고  냉장고 정리를 하며 한 주 동안 먹어야 할 음식을 주문한다. 그 과정에서 냉장고 지도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꽤 유용했다. 처음엔 냉장고 지도를 만들며 정말 모든 식재료를 다 썼는데 익숙해지니 자세히 쓰지 않고도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가계부도 정리하고, 일주일 스케줄도 정리한다.

5) 개수 혹은 범위 정하기

-반찬이 없기는 하지만 시댁에서 싸주시는 음식이나 음식을 하고 남아 저장해 둔 음식의 수가 지정된 공간을 넘지 않게 한다. 공간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음식을 어느 정도 소비하기 전까지 새 음식을 구매하지 않는다.


-옷도 옷장의 70% 정도로만 유지한다. 신발과 신발장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많이 버렸다.


-샴푸, 린스, 손세정제, 치얏, 화장품 등등 기존에 쓰던 것을 다 쓰고 다음 제품을 개봉한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꺼내놓은 샴푸만 5~6가지였다. 새로운 게 오면 기존의 것들은 안 쓰고 싶은 사람 나야 나.


-새로운 것을 사는 것에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기존에 것을 다 썼을 땐 말이다!


음... 더 있을 텐데 우선 생각나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혹시 이렇게나 당연한 걸 굳이 규칙으로 세워야 하냐고 묻는다면 난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아기 구강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매일 양치를 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라 말이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그럼 다음 편에는 뭘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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