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지났다. 그동안 아이는 많이 성장해서 더 씩씩해졌고 남편은 더 유연하고 부드러워졌다. 노력하는 아빠인 내 남편은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길을 찾는 걸 멈추지 않았고, 다양한 육아 지침서를 접하면서 생각을 바꿔나갔다. 아이에게 약간 겁을 주면서 혼내는 걸 멈췄고, 더 따뜻해졌고 더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게 됐다.
아이는 치마를 마지막으로 벗은 지난해 가을 이후로 '치마 타령'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계절이 맞지 않아서 입지 못하게 했던 이유를 용케 기억해서 날이 따뜻해져 오니 다시 치마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달리 설득할 말도 떠오르지 않아서 '네가 아빠를 불편해해서 못 입는다'라고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아빠가 늦게 올 때만 입겠다고 졸랐다. 그러다 말겠지 했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고 미운 7살로 돌변했다. 아이는 자기 요구를 잘 들어주면 착한 아이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부모인 우리를 한계로 몰아넣곤 했다.
아이의 요구 앞에 나의 갈등도 깊어졌다. 나는 솔직한 내 심정과 마주해야만 했다. 남편과 부딪히고 싶지 않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 싶다는 건 표면적인 이유였다. 나는 남편이 아이를 싫어하게 될까 봐 두려워했었다. 남편은 아빠라는 역할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아들바보과는 아니었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잘 놀아주지만 아닐 때는 냉정하게 혼을 내는 엄격한 선생님 같았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나고 응석받이로 변한 첫째를 대하면서 남편의 태도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보다 더 있는 그대로 아이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자신감을 더 얻었다.
남편이 예정과 다르게 일찍 들어오기로 한 날, 아이에게 작아진 원피스를 내줬다. 남편에게는 아무 언질도 주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치마 입은 아이를 보고 당황하겠지만 대놓고 싫은 내색은 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아이는 아빠를 보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섰다. 아이는 TV를 보고 있었는데 아빠가 왔다고 얘기하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남편은 전화 통화를 하며 방으로 바로 들어가서 아이에게 별다른 리액션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조금 있다가 원피스를 입고 있는 스스로를 자각했는지 옷을 갈아입겠다고 속닥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쫓아 들어가서 갈아입지 않아도 된다고, 아빠가 화를 내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아이는 긴장된 얼굴로 원피스를 입고 아빠가 방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빠가 나오자 아이는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내 뒤로 숨었다.
그런데 남편이 그런 아이를 뒤에서 살며시 앉아주며 "치마 입었네? 엄마랑 아빠는 네가 무엇을 하든 어떤 사람이든 너를 사랑해. 괜찮아"라고 얘기했다. 그 순간 우리 모두 약간 울컥해서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누구도 내색하지 않았다.
이 글을 처음 쓸 때까지만 해도 이런 해피엔딩은 꿈도 꾸지 않았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거나 에피소드로 끝날 줄 알았다. 부모 자식 관계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가 말도 안 되게 해결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