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는 연락이 닿은 당일 집으로 찾아오겠다 했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미도를 집으로 들일순 없었다. 내가 처분해야 할 물품이 뭔지, 또 미도가 그 물건을 옳게 평가해 줄지 모두 의문이었다. 다시 연락하겠다며 메신저 대화를 끝냈다.
무엇보다 문제는 피아노였다. 미도는 피아노 판매 문의에 답변을 회피했다. 카이로에 오자마자 산 피아노가 한대 있다. 사다리 차가 없던 이집트 사정으로 이 피아노는 그간 몇 차례 이사 중에 여기저기 흠이 생겨버렸다. 게다가 처음 기대와 달리 피아노는 사진액자를 두는 용도로 전락했다.
이집트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리면 팔 수 있을까?
이집트 돈 가치가 피아노 살 때보다 75프로나 폭락했는데, 어떻게 손해를 줄일까? 사진을 몇 장 찍고, 구입가치에서 90프로 남짓 희망가격을 내려받은 앱에 적었다. 전송 버튼을 누르자 등록완료 메시지가 떴다.
다음날 아침, 밤사이 피아노 관련 문의가 3개나 와 있었다. 가장 먼저 연락을 준 질문에 답을 보내자 오후에 방문해도 좋을지를 물어왔다. 오후 약속시간을 정하고 집 위치를 메신저로 보내자 답신이 왔다.
"오케이"
방문자가 도착했다. 후줄근해 보이는 중년남성. 빈 손으로 온 그가 안내를 받고는 피아노 앞에 섰다. 건반을 열어 본 지 한참이 지났을 피아노를 그가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한 번 쳐봐도 될까요?"
"그럼요. 그렇게 하시죠."
제대로 된 소리가 나와줄지 영 자신이 없었다.
그는 약 1분 동안 피아노 건반을 쿵쾅거렸다. 아무렇게 두드리는 건 아니었을 테고, 가급적 건반을 골고루 사용하는 몇 소절을 골랐으리라.
그가 피아노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마에 판다고 하셨죠?"
그와 내 눈이 서로 마주쳤다.
그 생각을 가늠코자 했으나, 단지 그 웃음만 보였다. 승부를 볼 시간인가? 거절을 받아야 할 시간일까? 희망 판매 가격에서 85프로 남짓 금액을 반신반의하며 베팅했다.
"오케이"
그는 한차례 고개를 끄덕인 후 사겠다고 했다.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든 검정 비닐봉지 안에는 200파운드 지폐다발 몇 개가 보였다.
별도 절차도 필요 없었다. 건네받은 돈을 다 세어 내가 금액을 확인하자, 그가 언제쯤 피아노를 가져가도 좋을지 물었다.
모든 헤어짐이 급작스럽다지만, 오랜 시간 액자 스탠드로만 존재해야 했던 내 피아노와 이별은 너무 순식간에 찾아와 낯설었다.
인부와 차량을 불러 피아노를 집에서 옮겨 나간 후 그가 떠나기 전 물었다.
"더 파실 물건이 있으세요?"
"아... 네. 리스트를 만들어 메신저로 보내도 될까요?"
"그럼요. 보내주세요."
가장 강력한 미도 라이벌이 불쑥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