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날은 횡단보도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도로에 차도 보이지 않는
새벽 시간이었지만,
신호등 붉은 등은 푸른색으로
금세 바뀌지 않았다
세상 일 내 마음으로 되는 일이
어디 있느냐고 몇 차례
날 달래고 나서야 겨우
길을 건널 수 있었다
내 아버지에게서도
또, 세상 누구로부터도
전해 듣지 못한 낯 선 것 중에
운동장 이야기가 있다
나이 먹은 남자에게 텅 빈
운동장이 하나쯤 생긴다는 거다
사람들 모두 떠나고
낯 선 운동장 가득
쓸쓸한 바람소리만 웅성일 때
난 이유 없이 그곳에 서 있는다
날은 훌쩍 저물고 불빛 하나 없는
운동장 한쪽에서 다른 한편으로
잡다한 생각들만 펄럭펄럭
폭설처럼 흩날리는 시간
손에 들려진 싸리비 하나 들고
느린 발자국 여기저기다 찍어가며
운동장 가득 쌓이는 하얀
그 밤을 쓸어 내어야 했다
좀처럼
생각은 그칠 줄 모르고,
쌓이는 한숨만 여기저기 모으다 보면
아침은 이미 오지 않을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