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롭게 4] 표지만으로도 그 책을 집을 이유는 충분하다.
비록 인간이 만들어내지만, 말이라는 건 한계가 없어요.
인간의 지식으로는 살 수도 얻을 수 없어요.
말은 역사와 독창성을 가진 생명체와 같아요.
말은 살아 있어요.
책 디자인이 이렇게까지 심오한 것일까?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이런 인간과 언어에 대한 고민이 그를 장인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장인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에 눈길이 간다. 일의 능숙함을 넘어선 삶으로의 승화가 매력적이고, 일이 삶이고, 삶이 곧 일인 한 사람의 삶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건 흥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건축가>, <이타미 준의 바다>, <안도 타다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를 보며 꽤 설렜는데, 이번에 그 목록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이번 분야는 예상치 못한 책 디자인으로, 주인공 기쿠치 노부요시는 일본에서 전통적인 북 디자인을 고수하는 장인으로 30년 이상 수작업을 통해 만권이 넘는 책의 표지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그의 작업 방식을 따라가며, 그의 삶과 출판 업계 사람들, 출판 현실 그리고 넘어서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종이책은 소설의 ‘몸’이라고 말하는 그의 디자인은 말 그대로 사려 깊다. 그것이 상품화를 위한 포장이 아니라, 책 내용의 연장선임을 분명히 한다. 책상 위에 놓인 핀셋과 자, 칼, 풀 들이 그의 손끝의 미학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종이의 종류와 질감과 무게, 폰트, 타이포그래피를 섬세하게 신경 쓰고, 띠지와 커버, 표지, 가름끈, 꽃천을 결정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 한 권의 책을 마무리 짓는다.
무엇보다 그는 책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통해 모든 디자인을 계획, 고민, 제작한다. 내용을 살리기 위해 종이를 선택하는 장면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까지 쌓아온 전통적인 방법으로 작업하지만, 디자인에 대해서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제자의 변형을 통해 자신이 만들어온 벽이 자연스럽게 부서지길 바란다. 그리고 동시에 예술 속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꿰뚫어 상업적인 성공을 기대하기도 한다. 진정한 장인이다. 이 일이 자기만족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타인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일과 같음을 분명히 한다. 그의 말대로 출판시장의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욕구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출판시장의 불황과 더불어 단지 책을 읽는 기능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존재 자체를 소중히 하는가에 관해 짙은 물음을 남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영원히 머물러 있으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페이드 아웃(fade out)되겠다는 다짐을 듣는 순간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이 일을 이어갈 제자나 다음 세대를 위해 덜 관여하겠다는, 그저 다음 주자의 꽃을 피우기 위해 밑바탕의 흙으로 남겠다는 겸손함, 스스로를 놓아줄 줄 아는 것 아름다운 퇴장을 꿈꾸는 것이 참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 일을 했지만 북디자이너로 성취감이 없었다고 고백하는 그의 말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과 회한이 아닌,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은 열정과 겸손이리라. 자기 일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여전히 배고픈 그의 모습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감동에 젖어 마지막 크레딧까지 지켜보다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제작, 고레에다 히로카즈...
[Zoom in]
- 블랑쇼 책 종이를 보고 감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장면
- 표지를 덮는 강도와 각 잡기의 고민
- 대나무 골무로 일정하게 접는 장면
- 사람들과 접점을 만들어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
[음악]
턴테이블에서 나오던 음악이 인상적이었는데, 누가 제목을 알려 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