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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ndo Sep 25. 2024

탱고 레슨

[영화롭게 7] 그래서 우리가 만난 거예요.

당신은 어디서 오셨나요?
언제 어떻게 왔나요?
땅인가요, 아니면 물인가요,
불인가요, 아니면 공기인가요?     
춤을 출 때면
확신할 수 있어요
오래전부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안 듯한 느낌
당신은 나 그리고 나는 당신     
하나는 하나
그리고 하나는 둘     
    <OST, I am you>    

https://www.youtube.com/watch?v=ZYWL3d6gSQE

I am you by  Sally Potter &Yo-Yo Ma


남자와 여자는 각자 집에서 책을 읽는다. 남자는 말론 브란도 전기를, 여자는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이 책을 처음 본 건 대학 때, 그냥 제목이 끌렸다. 그리고 감동인지 충격인지. 허세인지 이해도 못 할 독일어 원본까지 소장했다. 그렇게 그 시절 이 책은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과 함께 애장서가 되었다. 어쨌든 이 책은 내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상을 주체로 바라보는 나와 너의 관계, 관계가 수단이 아닌 목적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참된 인간성을 향해 가라고 격려했고,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의 깊은 연결을 꿈꾸게 했다.     



 

전작의 성공 후 후속작을 만들어야 하는 감독에게 슬럼프가 찾아온다면? 감독은 하이패션 업계에서 벌어진 살인 미스터리 각본을 쓰고 있었다. <올랜도>로 성공을 거둔 감독이 주인공으로 나타나자 실재와 허구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임을 확신하고 다시 집중해 본다. 그녀는 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유명한 댄서인 파블로 베론과 탱고 수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실제로 런던현대무용 학교에서 댄서와 안무가 교육을 받았던 감독의 실력이 이 영화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탱고는 여러 춤 중에서도 파트너와의 호흡이 매우 세밀하고 농밀한 춤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한 플롯 속에서도 예술과 사랑의 교집합과 합집합을 담아내며 은유로 가득한 영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매우 훌륭한 소재다. 거기에 성경 속 하나님의 천사와 싸우는 야곱의 장면을 등장시키고 예술과 종교의 관계에 관한 생각까지 담아서 예술을 영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 특히 영화 대본 장면을 제외하고는 흑백으로 촬영해서, 인물의 감정과 움직임 그리고 음악이 더 분명히 드러났다.   

   

이 영화는 일과 예술, 사랑의 경계가 흐릿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남녀가 각자의 경계를 넘나들고, 서서히 그 경계가 흐릿해지다가 하나가 되는 로맨스로 포장되어 있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영화 캐스팅을 약속하며 춤을 배우지만, 그 춤은 즐거움을 넘어 집착, 결국 일로 변해간다. 그들의 사랑조차 하나의 일이 되고 여자는 작가이자 감독, 연기자, 댄서, 연인이라는 수많은 역할 속에서 비틀거린다. 남자 또한 춤 선생에서 연인, 캐스팅을 받는 배우로 경계를 넘나들며 댄서의 기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나와 너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열린 결말에 희망을 안겨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왠지 모를 슬픈 예감이 들었다. ‘결국은 헤어지겠군….’      


이 영화는 파리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다양한 장소에서 나오는 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강가에서 춤을 추는 장면, 비를 맞으며 춤추는 장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4명이 거대한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따라서 탱고 춤이나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절대 피해 갈 수 없고, 탱고가 나오는 영화는? 이라는 질문에 <여인의 향기>라고 대답할 수 없게 된다. 언뜻 보면 독립 영화 같기도 하지만, 촬영 감독을 보면 바로 그 생각을 접게 된다. 이 영화는 빔 벤더스와 짐 자무쉬 같은 거장들과 주로 작업한 촬영 감독인 로비 뮐러가 라스 폰 트리에의 <브레이킹 더 웨이브>를 막 촬영한 후에 찍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탱고 자체도 빨려 들어가기 충분하지만, 그것을 돋보이게 한 것은 분명 촬영 덕분이었다.      


얼마 전에 올랜도 30주년을 기념해 감독과 틸다 스윈턴이 대화하는 장면을 봤다. 그들이 여전히 이 업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반가웠다. 물론 그녀의 영화는 올랜도와 이 영화뿐이지만, 이 두 영화로 감독은 내 마음에 남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는 순간 신기하게도 각자 어떻게 왔는지 모를 세 사람이 텅 빈 극장에서 보던 그 순간이 튀어나왔다.


분명 영화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이후 댄서 파블로 베론의 행방이 궁금했다. 정말 영화배우로 사는 건 아닐까? 하지만 감독의 영화 <피아노 2>의 단역을 마지막으로 더는 그의 소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결국은 헤어졌군...'이라고 생각해본다. 여전히 영화와 삶의 경계는 흐릿하다;;          



     

[Zoom in]     

- 알고 싶어요. 왜 우리가 만났는지

- 탱고가 날 선택했죠.

- 당신은 힘과 긴장을 혼동하고 있어요. 힘은 침착함에서 나오고 빠름은 느림에서 시작돼요. 과거의 습관은 전부 버려야만 한다는 말이에요!     



[음악]     

https://www.youtube.com/watch?v=DkxWgpo0PN4

Libertango(Astor Piazzolla) by Yo-Yo 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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