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초 이야기(30)
오늘따라 태양이가 유난히 조용히 움직이는 것 같아요. 멀리서 붉은빛이 아주 천천히 퍼져와요. 태양이는 가끔 자신이 떠오르기도 전에 너무 많은 차들이 움직인다며 투덜거리곤 해요. 요즘은 새벽부터 바쁘게 달리는 차들이 너무 많다고요.
태양이는 밤을 낮으로 바꾸는 마술을 오래도록 연습해 왔어요.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 마법에 별로 놀라지 않는다고, 그래서 김이 좀 빠진다고 했어요. 이제는 연초에만 그 마술쇼를 보러 몰려오나 봐요. 아무튼 오늘 태양이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술을 펼치는 듯해요. 나는 매일 그 마술을 바라보는 가장 충실한 관객이에요. 매일 같은 장면인데도, 이 장면만큼 나를 설레게 하는 건 없거든요. 정말 매일 봐도 신기하고 황홀해요. 어두웠던 세상이 조금씩 밝아지는 건 정말 감동이에요.
그러다 문득, 어둠과 빛 사이에서 뭔가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어요. 요 며칠 몸이 여기저기 쑤셨어요. 응애 때문에 워낙 고생을 해서인지 그 정도는 참을 만했어요. 그런데 특히 아팠던 무릎에 뭔가 혹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었어요. 천천히 몸을 움직여보니 특별히 아프지는 않았지만, 뭔가가 분명히 돋아나 있었어요.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있는데, 고요한 아침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풍선이야, 풍선!”
심오는 꽃이 피었을 때보다 더 호들갑을 떨며 거실을 뛰어다녔어요.
“이렇게 생긴 거구나, 드디어 풍선이 피었어! 열린 건가? 아무튼, 시작이네. 드디어 시작이야!”
내 무릎에서 첫 풍선이 열렸어요. 아픈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묘한 기분이 풍선 때문이었나 봐요!
“원래보다 한참 늦게 나와서 마음을 놓았는데, 나왔구나! 풍선이 없어도 널 좋아하는 마음은 똑같아.
풍선이 나와서 기쁘긴 하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오해하지 마. 넌 우리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난 네 편이었어.”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어요. 심오는 나를 울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어요. 그것도 늘 왈칵. 감동적인 울음은 언제나 왈칵 소리를 내요. 풍선이 안 피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어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나는 풍선이 꼭 피어야 한다고 믿었을까요? 그리고 왜 풍선이 없던 나에게 괜히 미안해했을까요. 그것도 결국 나였을 텐데 말이죠.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제보다 더 높아 보였어요. 이맘때쯤엔 붉은 옷이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하던 엄마의 얼굴이 구름 사이로 스쳐 갔어요. 나는 원래 초록색 옷을 좋아해요. 입으면 나랑 딱 맞는 느낌이 들어서 친근하고 편안하거든요. 하지만 하나만 고집하는 건 별로겠죠.
나는 언제나 주변과 비슷해지는 게 싫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늘 말했어요. 개성도 좋지만 조화도 중요하다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때론 주변을 생각하며 어울리는 것이 더 멋질 수도 있다고. 그건 내 뜻을 굽히거나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붉은 계통의 다양한 색을 섞어 입는 걸 좋아해요.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 같은 옷 말이에요.
심오의 뜨거운 사랑 고백이 내 마음을 계속 두드렸지만, 내 마음엔 엄마의 얼굴만 가득했어요.
엄마가 보고 싶었어요. 고작 풍선 하나 핀 것뿐인데, 왜 이렇게 엄마가 보고 싶은 걸까요.
하룻밤이 지나고 나니 팔, 다리, 목, 얼굴 할 것 없이 풍선들이 서로 경쟁하듯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어요.
더 많이 달리면 언젠가는 나도 하늘을 날 수 있지 않을까요?
며칠 밤 연속으로 나는 몸에 가득 풍선을 달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어요.
꿈속에서 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는데, 그곳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참 평화로웠어요.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졌어요. 심오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내가 떠나면 심오가 많이 서운해할까요? 그렇겠죠?
아니, 어쩌면…
이 풍선은 그저 떠나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더 잘 머무르라는 뜻일지도 모르겠어요. 아이 손에 꼭 쥐어진 풍선처럼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