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9장 22절
‘여호수아가 우리 주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쩌지?’
늙은 나귀는 지난밤에 기브온 족속인 주인이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떠나기 전부터 걱정이 한 짐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곳 사람들을 남김없이 진멸하라고 하셨다는데, 만약 주인의 거짓말이 들통나면 그들이 가만둘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자! 이 늙은 나귀야.”
바로 그때 주인의 회초리가 나귀의 궁둥이를 찰싹 때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인의 모습은 영락없이 거지꼴이었다. 낡은 옷에 신발에는 꿰맨 자국까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등에 얹은 곰팡이 핀 떡은 누가 먹을까 겁났고, 돈주머니나 가죽 부대는 돈이랑 포도주가 샐까 봐 조마조마했다.
“근데 우리 지금 나귀 타고 어디로 가는 거야?”
낡고 찢어져서 여기저기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가 옆에 해진 돈주머니에 물었다.
“나도 모르지. 갑자기 이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 걸까? 너덜너덜한 옷에다가 말라서 곰팡냄새가 풀풀 풍기는 빵까지 들고.”
낡은 신발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쓰레기통에 처박히기 전에 살아난 건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날 집어 드는데 느낌이 싸하더라고. 심지어 날 더 망가뜨리던데?”
구멍 난 옷이 말을 거들었다.
“근데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길갈 진영 쪽 아니야? 그곳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는 쪽인데. 참, 얼마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 때문에 여리고 성 난리 난 거 들었지?”
신발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들었지. 완전 다 부서지고, 잿더미가 됐다던데. 대장인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어마어마한가 봐. 아무래도 내가 볼 때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아.”
“응, 그래서 요단강 서쪽 지역의 왕들이 힘을 합쳐서 이스라엘과 싸울 준비를 한다고 했어. 헷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스족, 히위족, 여부스족의 왕들이 지금 벼르고 있데.”
신발이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우린 히위족인데, 왜 여호수아가 있는 쪽으로 가는 거야?”
해진 전대가 계속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혹시 이스라엘 쪽으로 가서 화친하려는 게 아닐까? 힘센 쪽에 붙어야 살아남으니까.”
신발이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이유를 생각해냈다.
“에이, 설마 다른 족속들을 배신하겠어? 그렇다고 해도 여호수아가 받아주겠냐고. 이제 거의 다 왔네. 뭐라고 하는지 한번 들어보자.”
신발의 예상대로 길갈 진영에 도착한 그들은 여호수아 앞에 서게 됐다.
“지금 이 사람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정말로 조약을 맺자는데? 그런데 왜 우리가 먼 나라에서 왔다고 거짓말하는 거지?”
옷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가 가까이에서 왔다고 의심하는 눈치야. 우선 기다려보자고.”
신발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호수아가 방금 어디에서 왔냐고 또 물었어.”
터진 가죽 부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근데, 이집트에서 있었던 일이랑 소문을 듣고 아주 먼 나라에 왔다고 또 거짓말을 하는데?”
“그러게, 3일 정도밖에 안 걸렸는데 먼 나라에서 왔다니... 아, 그래서 낡은 우리만 뽑아 온 거구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당하기 전에 종이라도 되어서 목숨을 건지려는 것 같아.”
신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나올 때부터 곰팡이투성이였는데, 뜨거운 걸 들고 왔다고 눈도 깜짝 안 하고 거짓말하네.”
곰팡이가 사방에 퍼져서 아파 보이던 빵도 한마디 거들었다.
“하하. 나도 거의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가죽 부대도 허탈한 듯 말했다.
“그래도 우리를 쉽게 받아 줄 것 같지는 않아. 이스라엘 사람들은 원래 가나안 족속이랑 절대 가까이하지 않거든. 우리랑은 다른, 하나님을 섬기니까. 게다가 하나님한테 모든 걸 물어보고 결정한다고 했어. 그러니 거짓말이 금방 들통나지 않겠어? 그러니까 우리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
신발이 그들을 다독이며 침착하게 말했다.
“방금 들었어? 하나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여호수아가 바로 우리를 받아줬어. 살려준다는 조약까지 맺고, 족장들에게 맹세까지 했어, 방금.”
“헉...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럼 이제 정말 고향으로 못 돌아가는 거야?”
3일 정도 지난 후, 진영이 시끌벅적해졌다. 신발은 다급하게 옷과 전대, 가죽 부대에게 들은 소식을 전했다.
“어떡해, 들켰어... 우리가 근처에서 온 걸 알았나 봐.”
“큰일이군. 이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모두가 한목소리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 거짓말은 했지만, 한 번 한 맹세하면 절대 무를 수가 없어. 절대 우리 마을 사람들을 해칠 수가 없다고. 여기 사람들의 원망은 커지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는 없지 뭐.”
신발이 차분하게 말했다.
“여호수아가 사람들을 불렀어. 마을 사람들이 목숨을 건진 건 정말 다행이지만, 결국 하나님이 선택하신 곳에서 이곳 사람들과 여호와의 제단을 위해서 나무 패고 물 긷는 종이 될 거래.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맘대로 처분해달라고 했는데, 내 예상대로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은 꼭 지킨다고 했어.”
모두 신발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말이야, 아무래도 우리 마을 사람들 때문에 이스라엘이 좀 곤란해질 것 같지 않아? 이웃의 다른 왕들이 가만있겠냐고!”
얼마 후 예루살렘의 왕 아도니세덱은 기브온 주인이 이스라엘과 화친했다는 소문을 듣고 불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는 크고 강한 기브온이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즉시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 함께 기브온을 칠 준비를 시작했다.
[여호수아 9장 22절]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어찌하여 심히 먼 곳에서 왔다고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