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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빈 Sep 16. 2022

어느순간 봇이 된 나

긍정봇? 부정봇?

매일 점심마다 기자미팅을 한다. 점심뿐 아니라 오후 티미팅, 저녁약속까지 이어질때가 많다. 가족, 친구가 아닌 이상 아무리 친해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 관계다. 그래서 매 시간 긴장 안에 갇혀 있다. 


난 말을 조리있게 혹은 재미있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최소 2시간을 이끌기 위한 나만의 비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리액션'이다. 오~ 아~ 네~ 아하하! 정도의 의성어(?)를 적절한 타이밍에 터뜨리기만 하면 되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순간 리액션봇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리액션 봇은 기자미팅에서 꽤 유효한 무기다. 그리고 중간중간 적절한 질문을 던지면, 상대방 주도 80%, 난 20% 에너지만 쏟으면 된다. 기자가 지속적으로 말을 하게끔 유도하면, 업계 흐름도 익히고 타사 시크릿도 때때로 주워먹을 수 있다. 즉, 상대 주머니를 열게 하는 8할이 리액션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근데 봇이 조금씩 독이 되기 시작했다. 


하루 반나절 이상을 봇이 되어 살다보니, 일상에서도 자연스레 '봇봇'이 되어버렸다. 그냥 직원들과 얘기할때도 무의식적으로 아~ 오~ 가 나왔고, 어느새 '영혼1도 없는 리액션 봇'이란 별명이 붙어버렸다. 직원과의 대화면 그나마 다행인데 리얼 라이프에서도 이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친구와 대화할때도, 가족과 대화할때도, 대화의 반 이상 지나가면 에너지가 점점 떨어지면서 리액션 봇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기자와 얘기할 땐 그나마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한다는 티를 내기 위해 '진정성 봇'으로 행동하지만, 오히려 일상에선 영혼없는 봇으로 변해 버리니 간혹 오해를 받기도 한다.


내 말은 듣고 대답하는 거야? 


이뿐만 아니라, 평일 내내 긴장 속 대화가 습관이 되다보니 오히려 일상으로 돌아오면 입을 닫게 된다. 유명 개그맨이 집에선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누구보다 이해가 된다. 대화가 지치고 뭘 해도 리액션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만 쌓인다. 사회인의 떼가 조금 덜 묻었을 땐 '대화' 자체가 즐거울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참 까마득하다. 이것도 직업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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