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대행사에 다닐 때 뷰티 제품을 맡은 적이 있다. 매거진 기자들을 만나야 하고 다양한 뷰티 행사에 참석해야 했다. 어떤 제품보다도 특히 '옷차림'에 신경써야 할 때였다. 뷰티를 홍보하면서 안뷰티하면 웃기지 않나!
나와 함께 담당하는 후배가 있었는데, 회사 내에서도 인정한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무엇이 자유롭냐, 복장이 자유로웠다. 지금에와서 속시원히 하는 말이지만, 잠옷으로도 입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옷을 항상 걸치고 다녔다.
그와 함께 미팅을 나갈 때면 굉장히 신경쓰였다. 덩달아 날 바라보는 시선이 달갑지 않아 보이고, 싸잡아 추레해 보일 것만 같았다. 참다참다 진지하게 한 마디했다. '그래도 우리가 뷰티를 홍보하는데, 적어도 외모에는 신경쓰자'라고 말이다. 아주 잠시 잠깐 바뀌는 듯 싶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지금 그는 홍보를 떠나 자유로운 일(?)을 하고 있다.
최근 직장인 성지인 지역으로 회사가 이사를 하면서, 부쩍 타인의 옷차림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정장차림이고, 캐주얼이라 해도 개성을 살리든 원톤으로 깔끔하게 차려입고 다니는 모습이다. 문득 예전 후배가 생각났고, 홍보인(아니, 사실 모든 직장인)에게 옷차림은 어떤 의미인가를 잠시잠깐 생각하게 됐다.
패션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편한 옷차림만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패셔너블하게 옷을 입을 수 없다. 누구나 명품을 입을 수도 없다. 옷을 잘 갖춰입는다는 거는, 적어도 때와 장소를 가려 옷을 선택하는 센스다. 그런 센스는 '아, 적어도 날 만나기 위해 정성을 들이고 신경을 썼구나'라는 배려로 다가온다.
기자미팅을 많이 하다보면, 옷을 갖춰입고 나왔는지, 후줄근하게 입고 나왔는지에 따라 배려심 차이를 많이 느낀다. 기자 역시 동일하게 느낄 것이다. 적어도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하는 말에 신뢰감이 더할 것은 분명하다. 홍보는 기업, 제품을 대표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반 이상일 때가 있다.
그때 그 후배는 내 지적에 이렇게 반박했다. '글 잘 쓰고 말만 잘하면 되지 않나요? 옷차림이 중요한가? 개인적 터치 아닌가요?'라고 말이다. 글 잘쓰면 작가하면 되고, 말만 잘하면 전화로 하는 업무 하면 된다. 적어도 대면하고 상대방 환심과 신뢰를 사야하는 업무라면 보이는 것에 대한 투자는 아낌없이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명품을 걸칠 수 없지만 센스는 걸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