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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강 Sep 09. 2020

나의 그림자

내 그림자를 얌전히  옆에 머물게 하려 해

얼마 전 자동차를 점검하러 서비스센터에 갔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고 맡기고 가란다. 서비스센터 앞에 마침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운전을 하게 되면서부터 짧은 거리도 버릇처럼 차를 타고 나가게  된다. 버스를 타본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버스만 타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오래된 장면이 있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중학교 시절의 일이다. 시골에서 도심지 학교로 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통학거리가 멀었던 나는 늘 만원 버스에 시달렸다. 매달리다시피 겨우 버스를 타고 숨도 못 쉴 만큼 빡빡한 버스 안에서 꼼짝도 못 하고 서 있는 일은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버스 안내양이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매달려있는 우리를 밀어붙일 때는 거의 마른오징어가 되었다. 남녀 가릴 것 없이 우리는 한 무더기가 되어 안으로 안으로 구겨 넣어지곤 했다. 땀내 나는 교복들 사이에 코를 박고 숨도 못 쉬었고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만원 버스의 추억은 아찔하다.

그 시절은 일요일에도 자율학습을 위해 등교하곤 했다. 내 공부방이 없었을뿐더러 농촌 마을 주변에는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독서실도 도서관도 없었다. 다만 일요일에 타는 버스는 사뭇 달랐다. 여유 그 자체였다. 주말 시골길을 달리는 한산한 버스에 앉아 잠시나마 책을 읽는 것이 시골 여중생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날은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무렵이었나 보다. 버스를 탔을 때 불이 켜져 있었던 기억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을 눕히고 그 위에 작은 단행본을 꺼내놓고 읽기 시작했다. 몇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갑자기 어두워지며 검은 그림자가 글을 삼켰다. 지난 정류장에서 탔는지 한 남자가 바로 내 옆에 서서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불빛을 가린 것이다. 빈자리도 있는데 굳이 앉지도 않고 계속 서 있었다. 책을 더 읽고 싶어 몸을 이쪽으로 틀어 봐도 저쪽으로 돌려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비켜주십사 슬쩍 쳐다보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치를 줬건만 그 사람은 알지 못했다. 도저히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어른한테 비켜달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더 이상 한 줄도 읽을 수 없어 조용히 책을 덮었다. 그래도 그 아저씨는 모르는지 모른 척하는 건지 내 빛을 가리고 계속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 버스에서 책 읽는 재미를 부주의한 그림자가 덮어 버렸다.


내 꿀맛 같은 시간을 뺏긴 날의 느낌을 어린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나쁜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남을 괴롭히거나 남의 것을 훔치거나 탐하는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오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서 있고 싶은 곳에 있었을 뿐일 텐데 내 독서를 방해했고 나의 즐거움을 뺏어 가버렸다. 혹시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그림자를 만들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누군가의 빛을 가리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는 않은가? 어릴 적 경험 이후로 이 물음표가 늘 뇌리에 서성댄다. 쉽지 않은 일이다.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니고 내게 기쁜 일이 누군가의 아픔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 다반사이다. 풀 한 포기 밟지 않고 길을 걸을 수 없듯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민주시민으로서 준수해야 하는 법과 질서를 따르고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내 무지나 부주의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여름 더위에도 마스크를 쓰고 버스에 오르며 혹시나 내 서툰 행동이 남에게 피해로 이어질까 봐 거리를 두려고 조심조심했다. 다행히 버스는 한산했고 나의 그림자는 내 옆에 얌전히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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