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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강 Sep 01. 2020

고장 난 피아노

아이들의 뚱땅거리는 피아노 소리가 정겹다

퇴근하려는데 연구부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교장실로 들어왔다. 지난해 구입한 디지털피아노가 고장이 났단다. 80만 원으로 구입했는데 고치는데 50만 원이 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를 물었다. 1년도 안된 피아노가 고장 났으니 AS를 신청하면 무료 서비스가 될 텐데 왜 걱정을 하나 물었다. 연구부장이 멋쩍은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사연이 있었다.




방과후학교 설문에서 매년 피아노 교실을 열어달라는데 피아노를 둘 공간도 가르칠 공간도 마땅치 않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고민 끝에 학교 담장 너머에 있는 사택을 활용하기로 하고 깔끔하게 정리했다.
여름 내내 유치원 어린이들과 1학년들 방과후 피아노 수업을 거기서 받았다. 겨울이 되자 추워서 수업이 어렵다고 했다. 시끄럽더라도 피아노를 옮겨서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하더니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신없이 바쁜 선생님들 도움 없이 시설 주무관님 혼자 수레로 옮기다가 피아노 한 대를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다. 부서져서 건반 몇 개가 튀어나왔고 소리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속상했지만 실수한 주무관님을 생각하니 마음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이걸 고쳐야 하나? 새로 사야 하나? 퇴근하는 차 안에서 혼자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음 날 피아노를 살펴보러 갔다. 먼저 상태를 봐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50만 원 아니 80만 원을 들이기 너무 아까웠다.
날렵했던 디지털피아노는 다리 부분의 나사못이 튀어나와 있었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뒤판도 깨졌으며 왼쪽 건반 8개가 들쑥날쑥 튀어나와서 눌러지지도 않았다. 겉모습은 번드르하고 멀쩡했는데 속은 왜 이렇게 허술하게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튼튼하지 않으니 살짝 떨어뜨렸을 뿐이라는데 전쟁에서 지고 온 패잔병 같이 부서지지.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갑자기 뜯어보고 싶어 졌다. 어차피 많은 돈을 들여 고쳐야 한다면 직접 분해해 보는 것도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주무관님을 불러 나사를 풀게 했다. 겉옷을 벗고 팔을 걷어붙이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디지털피아노를 살폈다. 건반들이 뒤엉켜 있어서 부술까 봐 조심스럽게 위로 당기니 건반 하나가 빠졌다. 피아노 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핸드폰 전등을 켜서 비춰 속을 들여다보며 건반을 본체에 연결하는 곳이 떨어져 있었다. 떨어질 때 충격으로 연결부위가 빠진 것이다. 8개의 건반을 모두 조심스럽게 빼서 차례대로 놓고 하나씩 하나씩 조립하며 연결하니 모양이 갖춰졌다.

이제 눌러서 소리만 나면 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건반을 눌렀다. 도레미 솔 파라시 도레미~ 소리는 나는데 음이 이상했다. 건반을 다시 빼서 보니 뒤에 C, D, E~~ 건반마다 코드가 있었는데 엉뚱한 순서로 끼운 것이다. 분명 나는 배열된 순서대로 끼워넣었는데 아마 주무관님이 처음 떨어뜨렸을 때 이리저리 끼워 맞춰보셨나 보다. 다시 순서대로 잘 끼웠다. 이번에는 도레미파 솔라시 도레미~ 순서대로 제대로 연주되었다. 나도 모르게 "와아! 된다. 소리가 난다."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 묵묵히 돕고 있던 시설 주무관님이 이제야 멋적게 웃으며 한 마디 했다.

  "내가 죄송하고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유. 말도 못 하고 걱정했는디 고치니께 정말 좋네유. 허허허."



나사를 조이며 마무리하는 주무관님이 밝게 웃으며 드라이버를 돌리는 모습을 보니 나도 흐뭇해졌다. 선생님들도 전문가에게 맡겨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고쳐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학교 예산을 무려 50만 원을 아꼈으니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더 좋았던 것은 실수한 주무관님의 마음에 그어졌을 자책감을 지워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걱정 말아요.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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