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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강 Aug 15. 2020

풀인 줄 알았는데 꽃이었다

올해도 페튜니아는 풀이었다가 꽃이 되었다

긴 명절 연휴 후에 출근하니 화분 한 개가 말랐다. 물을 많이 먹는 화초라 그 며칠을 견디지 못했나 보다. 미안한 마음에 물을 흠뻑 주었지만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뽑아버려야 하나 더 기다려야 하나 망설이는데 몇 해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바쁜 사무실에 오는 영전 축하화분 속 꽃은 참 불쌍하다. 짧게는 한 달도 못 가거나 몇 달 버티더라도 싱싱하게 피어 제 역할을 하는 것은 거의 없다. 축하화분 중에는 난(蘭)이 특히 많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오래 살아서인가? 난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마르고 말라가다가 누렇게 뜬 잎이 보이면 한 개씩 뜯어내고 결국은 두세 이파리 엉성하게 남았다가 건물 뒤편 구석에 버려지는 것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진 문화지만 정기 인사철이라 한 꽃집에서 많게는 열 개도 넘는 화분을 내려놓았다. 알록달록 화려한 꽃, 아련한 미소를 짓게 하는 작은 꽃, 잎이 무성한 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이다. 와아! 예쁘네요. 사람들이 관심을 갖자 화분 주인은 한두 개씩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각자 책상 위에 옮겨진 화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가끔씩 꽃에 눈이 갈 때가 있다. 기운 없어 보이는 화초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 금요일 퇴근 무렵이면 책상마다 돌아다니며 물을 주기도 하고 떡잎도 떼어내어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가고 또 얼마 가지 않아서 말라죽은 화초들이 생겨났다. 잎도 뿌리도 없는 화분들을 사무실 밖 계단에 모아두니 제법 예쁜 화분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다.

남은 화분들 중에 작은 나무 화분이 하나 있었다. 무슨 꽃이 심겼었는지, 언제부터 사무실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건물 뒤편에 옮겨야지 하면서 미루다 보니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에 비를 맞더니 어느새 조그맣게 풀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풀이라는 것이 그렇다. 곡식과 함께 나거나 정원의 꽃이 피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리 예뻐도 어릴 때 뽑아내야 한다. 잠시 방심하면 금방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커져버려서 곡식도 꽃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이 없는 빈 화분에 돋아난 풀은 굳이 뽑을 이유가 없다. 풀이 화분의 주인이 된다.


매일 아침 조그맣던 풀 싹이 조금씩 차오르듯 커가는 모습을 보며 웃음 지었다. 바깥에 두었으니 굳이 물을 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어느 날 출근을 하는데 세상에나! 그 풀이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분홍색 커다란 꽃 한 송이를 피워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페니아 꽃이었다. 풀인 줄 알았는데 꽃이었다. 그렇게 페튜니아 작은 싹은 혼자서 피어나 두 송이 꽃을 피워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주고 감탄했다. 풀이라고 뽑아 버렸으면 어쩔 뻔했어 안도하며 그 날의 작은 감동을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지만 전제조건이 있어야겠다. 될 나무, 될 꽃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작은 씨앗이 어떤 나무로 자라날지 어떤 꽃으로 피어날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교육자인 나에겐 언제나 어려운 숙제이다. 숨겨놓은 꽃씨를 커다란 꽃으로 피워낸 나무화분처럼 우리는 아이들의 숨겨진 재능을 찾아내고 뿌리내릴 대지가 되어 주어야 하고 빗물이 되어 싹을 틔우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싹둑 자르거나 뽑아내지 말고 기다려주기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꽃이든 어떤 나무든 아니면 어떤 풀이든…….'

오늘 출근하니 다 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잎사귀 몇 개에 생기가 돈다. 깨어나려나 보다. 때를 놓쳤으니 더 많은 정성을 기울여도 제 모습을 찾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뽑아내지 않고 기다리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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