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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Feb 28. 2024

네 이웃의 식탁

지하철역 무인예약함으로 배달시킨 책이 도착했다. 책을 가져오려면 버스에서 내린 다음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 한참 걸어가 책을 수령하고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실제 해보니 5분도 안 걸리는데 퇴근길엔 이게 참 어렵게 느껴진다.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어서.


그래서 책을 빌려놓고도 안가지러 간 날들이 많았다. 무인예약 정지도 몇번 당했다. 이번에도 고민고민하다 책을 가져왔다. 


'위저드 베이커리' 느낌의 소설일까 해서 빌린건데 좀 달랐다. 현실이 시궁창인건 같은데 이 책에는 마법의 개입이 전혀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을 넘어선 미래에도 시궁창일걸 알면서 보게 된다.


책의 내용은 저출산 극복을 위한 청년 부부용 공동주택에 입주한 4가족의 짧은 이야기다. 저렴한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는 대신 육아 맞춤형(?) 부부만 입주할 수 있다. 아이는 1명 이상이고 향후 자녀계획이 3명은 되어야 하고, 셋도 키울 수 있게 외벌이 가정이어야 한다. 실험대 위에 오른 네 쌍의 부부들은 이리 튀고 저리 튄다.


육아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공감하면서 읽을수도 있겠지만... 내 입장에선 작위적인 부분도 좀 있다고 느껴졌다. 효내의 육아는 '엄마 학대'에 가까웠는데, 산후조리원에서도 일을 하느라 퇴소당하고 몇년째 잠도 못자고 혼자 육아를 감당하면서 (돈도 안되는 듯한)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남편들은 육아에 관해서 한결같이 너무 무능했다. 감기 걸린 아이들 약을 챙겨먹일줄도 모르고, 아이들이 짜장을 옷에 바르든 방바닥을 크레파스로 문지르든 눈으로 지켜보다 잠드는... 남편이 전업주부인 요진의 집에서도 공동육아하는 아이들 음식을 만드는건 아내 요진의 몫이다.


결국 요진, 효내 모두 아이를 데리고 떠난다. 남편과 공동주택을 남겨두고. 하지만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약국에서 알바하는 요진과 프리랜서로 수입도 적은 효내가 어떻게 아이까지 키우면서 살아갈지는 잘 모르겠다.


책 제목에 나오는 식탁은 공동주택 뒤뜰에 놓인 거대한 원목식탁을 말한다. 12가구가 앉아서 식사를 할 수도 있는 식탁이지만 대체로 비어있는.


식탁을 채우려면 공동주택에 더 많은 가족들이 입주해오고 아이들도 더 낳아야 한다. 하지만 소설에선 집이 해결된다고 해서 사람들이 출산과 육아를 선택하진 않을 것 같다. 그 안에는 그것말고도 사람의 힘으로 메꿔야할 수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얽어놓아도 그 짐은 덜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 시율이까지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을 돌봐야하는 돌봄노동에 참여하는 이상한 구조가 될 뿐이다.


그래서 식탁은 점점 비어갈 뿐 채워지지는 않는다. 


이 소설은 이런 식탁의 모습을 주로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이나 사건들에 몰입시키는 대신 식탁이 비워져가는 과정에 더 집중시킨다.


저출산으로 빠르게 비워져가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이 식탁에 다시 사람들이 앉게 만들 수 있는 마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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