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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썬 Dec 23. 2021

방학이 두려운 사람들

[오늘도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_어쩌다 덕업일치] 11 새 학기 책 만들기

“네~ 교수님~ 요즘 너무 바쁘시죠~!”


책을 한 권씩 만들수록 ‘교수님’이라는 말이 입에 찰지게 붙는다. 어느새 메신저 친구 목록에는 ㅇㅇㅇ 교수님이 늘어간다. 내가 만든 책의 저자는 대부분 교수와 의사였다. 보통 저자들은 학교에서 강의하거나 병원에서 진료를 보거나, 혹은 둘 다였다.


전문적인 학술도서나 대학교재의 저자는 한 권당 한 명인 경우도 있지만, 여러 명일 때가 많다. 특히 학회에서 발행하는 대표 도서나 교과서라면 십 수명을 넘어 수십 명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작업한 책 중에 저자가 50명인 경우도 있었다.


책을 만드는 동안 저자와는 평균 3회 정도 교정지를 주고받는다. 매번 교정지를 보냈다고, 문의드릴 내용이 있다고, 마감일이 지났다고, 보내주신 건 잘 받았다고 연락한다. 이렇게 잦은 연락이 필요하지만, 저자들은 기본적으로 너무 바쁘다. 강의와 진료 사이에 전화 통화 타이밍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메시지를 남겨도 언제 답을 받을지 모르니 초조하다. 며칠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기면 비상사태다. 그러니 오는 전화는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게 된 계기였을지도! (미리 일정을 알려주시는 분들도 많다)


책은 학과나 진료과의 교과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방학 시즌에  학기와  학년에 공부할  마무리가 한창이다. (그때 시작하는 책도 있는데, 그만큼 촉박하다) 반드시 학기 시작 전에 출간해야 하니 6~8, 12~2월은 업무 강도가 매우 높다. 야근은 기본이고, 철야도 종종 하며, 주말 출근도 빈번하다.   내내 하루도  쉬고 회사에 나간 적도  있었다. 종일 앉아서 일만 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니 학기를   치르고 나면 몸이 거덜 난다.


이런 상황에서 편집회의가 겹치면 총체적 난국이다. 진행 상황과 내용 이슈를 체크해서 아름다운 회의자료를 만들어야 하니까. 교정지  시간도 없는데 회의자료라니 가혹한 현실이다. 주말에는 피땀 눈물이  자료를 들고 회의 장소로 향한다. 설사 그게 지방이더라도 말이다. 저자들이 모두 같은 지역에 거주하지 않고, 시간도 여유롭지 않아 주말 회의가 많은 편이다. 같은  다른  회의와 겹치면 영업자와 편집자가 나누어 가기도 한다. 때로는 편집자가 참여하지 않는 회의도 있다. 이는 상황마다 회사마다 유동적이다.

 

편집회의에서는 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출간 계획을 세우거나, 원고와 교정지를 취합했을 때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는 등 실질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회의를 자주 할 수 없으니 최대한 핵심 내용이 많이 언급되도록 질문하면서 방향을 잡아야 한다. 한 가지 문제로 오랫동안 이야기하면 회의 시간이 부족할 때가 많으니 완급 조절이 필수이다.

 

저자가 많을수록 논의 내용도 많아질 수 있다. 작업자 입장에서는 그런 내용이 한 번에 정리되는 편집회의를 거치면 진행이 더 수월하다. 하지만, 회의 준비부터 종료 후 회의록 정리까지 소요되는 시간만큼 실제 교정지를 볼 시간이 줄어드니 애가 탄다. 회의 중에도 내용을 놓치지 않으면서 식사나 다과 등 챙길 부분이 많다. 이러니 편집회의라는 말만 들어도 초긴장 상태가 된다.



"아! 정말 너무 힘들다! 이번 학기까지만 하고 그만둔다!"


이번 학기만이라고 해놓고 대체 몇 학기를 보내는지, 학기만 끝나면 살 것 같으니 또 잊고 지내면 어느덧 다시 새 학기다. 그래도 이렇게 고생해서 몇 권씩 만들고 나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뿌듯하다. 그래서 일과 손절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보람을 먹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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