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중요했다. 첫 아이를 낳고 산본에서 마포 중동으로 이사를 왔다. 몇 년만 살다 가야지 했는데 14년이 되어 간다. 처음 이 집 문을 열고 먼저 확인하는 것은 집 가까이에 놀이터가 어느 거리에 있는지였다. 2층 베란다 맞은편에 놀이터가 있어 언제든 아이를 관찰 할 수 있었고, 지하 2층에는 자동차를 넉넉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맞은편 기찻길만 건너면 서대문구 모래내시장이 있었고, 산책로 10분거리에 한강으로 나갈 수 있었다. 첫째가 기차를 구경하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유모차를 끌고 기차 지나가는 것을 출근부 도장찍듯 그렇게 지켜보았다.
둘째를 낳고 모유수유하기 위해 점심시간에 택시를 타고 회사로 오곤 했다. 이게 다 근거리에 집을 구한 덕분이었다. 아마 첫째에게 있던 아토피가 둘째에게 없는 이유도 이때문이라고 나 스스로 믿고 있다. 연남동에서 중동이라는 동네로 접어들면 내부순환로가 보인다. 내부순환로 때문에 큰 기둥이 여러개 박혀 있어서인지 내가 살던 살던 ‘중동’이라는 동네는 집값이 높지도 않았고, 동네 토박이들이 많이 살아서인지 정감이 있었다. 오가는 출근길에 만나는 어르신들과도 인사를 나누었고, 내가 아플 때면 물김치며, 반찬을 주시는 왕 언니도 계셨다. 옆집 205호에 살던 어머님은 수술하고 몸조리 잘하라고 죽까지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오래 살면 이점이 많았다. 동네 사람들이 누구네 아이인지 알았고, 뭔가 이상하거나 잘못 된 일이 발생하면 보호해주시기도 했다. 마트 사장님은 ‘오늘은 둘째가 놀이터에 안 보이네요“라며 묻기도 했고, 문구점 아저씨는“등교길에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한 둘째가 외상으로 가져갔어요”라고 하시면 물건값을 건넸다. 맞은 편 김밥 집 사장님은 돈이 없어도 일단 먹이고 나중에 받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늦게 퇴근해도 불안하지 않았다. 직장에 있는 동안 아이를 봐주시던 이모님도 잊을 수 없다. 남편의 갑작스런 명예퇴직으로 이모님과 헤어졌지만 지금도 연락을 하고 명절 때면 아이들 용돈을 주시러 온다.
이 집을 떠나면 정들었던 사람들과 멀어지게 된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더 넓은 공간으로 가지만, 사실 크게 기쁜 마음은 들지 않는다.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하는 두려움과 설레임은 크다. 그런 내 마음을 둘째가 알아챘나보다. 둘째가 버스를 타고 다니고서라도 지금 다니는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으면 다니라고 했다. 몇 번 버스를 타고 다니다가 “집 근처로 전학하는 게 현명한 것 같네요”라며 전투의지가 사그라졌다. 대신 토요일마다 태권도 학원과 미술학원은 여기서 다닌다고 선포를 하고 교통카드를 챙기기 시작했다. 첫 째도 최근 상담센터에서 진행하던 상담을 드디어 종료했다. 상담사가 “아이가 밝아 졌다며 더 이상 상담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라고 했다. 첫째가 기억에 많이 남을 것이며, 언제든 ‘형’처럼 연락하라는 말도 남겼다. 특히 친구와 함께 먹으라고 준 기프티콘을 상담사에게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도 그 때 알게 되었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키워가고 있다는 것이 기뻤다.
14년 전 이사는 오로지 내 힘과 의지로 정리되었다. 이삿짐 센터가 막 헤집어 담아 놓은 물건들을 하나 하나 꺼내어 제자리를 찾는데 몇 달이 걸리는 경험을 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까 두려워 책장 서랍이나 수납장에 있는 물건을 하나씩 꺼내 상자에 담았다. 새벽 1시까지 작업을 하다 힘들고 지쳐갈 무렵, 지인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사 준비한다고 바쁘지 않냐며 몸 챙기라는 말도 남겨주었다. 2년 전에 이사한 동생은 요즘 이삿짐 센터가 물건을 잘 정리해서 가져다 주니 무리하게 할 필요없다며, 14년 전 나의 경험이 고래에 새우등 터지는 시절이라며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래서인지 퇴근 후 여유있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사람은 아는 길도 물어가는 게 맞다.
무엇보다도 기쁜 건 14년 동안 묵힌 먼지를 털어내듯, 14년간 쌓인 경험과 추억들을 상자에 고스란히 넣어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득 생각날 때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상자가 내 머릿속 공간에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해진다. 어찌보면 나에겐 정신적인 자산인 셈이다. 오늘은 14년 처음 문을 들고 이 집에 들어올 때 설레임을 내일 들어가는 집에 대한 환희심으로 바꾸도록 감사했다는 말을 반복해서 하련다. 덕분에 잘 살았다. 이젠 다른 사람에게 이 공간을 내어주고 난 새로운 공간에 다른 경험으로 채워러 간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