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맘 May 03. 2022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이제야 사랑합니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저자정진영출판무블출판사발매2021.07.19.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 이제야 사랑합니다 -




도서관에서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라는 책이 미성숙한 엄마로 인해 상처받은 자녀가 극복하는 성장 소설인 줄 알았다. 한때 나도 엄마 딸인 게 불만일 때도 있었다. 그래서 겉으로는 고마운 존재로 생각하면서도 속으로는 원망하는 이중적인 감정을 가졌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엄마에게 보이는 감정이 다른 면으로 보면 ‘엄마는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존재여야 한다’라는 고정관념 때문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책 내용은 주인공 범우가 자살한 어머니와 영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을 이해하고 어머니를 진정으로 한 존재로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대필 작가로 어렵게 살아가던 범우도 HT 기업 이사를 앞두고 대장암 4기 시한부 판정을 받고 삶을 포기하려고 한다. 새로 장만한 중고 미니쿠퍼 컨버터블을 타고 자유로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가드레일에 정면으로 부딪쳐 사고로 죽으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실패로 끝난다. 그는 육개장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삼각김밥 세트를 먹으면서 “씨발, 왜 이렇게 맛있냐?”며 눈물을 흘린다. 살고 싶을 정도로 맛을 느끼는 순간이 더 애처롭다.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범우가 대필해준 자서전 주인공인 HT 기업 ‘나재필’ 회장이 입사를 제안한다. 향후 HT 관련 부정적인 뉴스와 소문 확산을 사전에 차단하거나 최소화하려면 창의적인 홍보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범우’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장을 가진 인공지능이 HT 기업의 주력 산업이 될 것이며,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을 통해 논리적으로 소통이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하는 것이 이 기업의 목표이다. 특히 나 회장은 “인생은 짧은데, 부침을 겪을 만큼은 길다고 그래서 힘든 거라고. 짧고도 긴 인생인데 힘을 덜 들이려면 함께 가야죠”라는 말로 범우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함께 가야 한다는 그의 말이 회장의 철학을 한마디로 보여주고 있다.



HT 기업 인공지능 연구실에서 혼자 근무하고 있는 R&D 센터 경선이라는 책임연구원을 만나면서 죽은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이미 죽은 사람을 생전모습과 가깝게 AI로 재현해 대화를 나누는 일도 가능한가요?”라는 범우 질문에 다양한 환경에서 수집한 데이터가 먼저 확보해야 한다고 경선이 말한다. AI 음성 기술을 적용해서 죽은 사람을 재현할 수 있다는 그녀 말에 범우도 죽은 어머니 흔적을 찾아 나선다. 경선 연구원 또한 뱃속에서 사산한 아이를 재현해서 ‘은총’이라는 이름의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범우가 기억하고 있는 어머니는 늘 무기력했으며 홀로 술을 많이 마셨고 바깥출입을 꺼렸던 사람이었다. 그는 궁금했다. 다른 삶을 살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생의 마지막에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디지털 기록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기에, 고인이 남긴 일기장 몇 권을 토대로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종잡을 수 없었던 어머니를 진정 이해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남긴 기록과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늘 경제적인 어려움에 지쳐 고립되어 홀로 방치된 한 여자의 일생을 보게 된다. 어머니는 원하지 않았던 삶을 살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시골에서 홀로 상경한 스무 살 어머니는 마음에 들지 않은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고 동거하면서 임신까지 했으나 첫 아이마저 결국 유산하게 된다. 기록 곳곳에 ‘돈이 너무 귀하다. 아무것도 없다. 빈털터리다’라는 문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심지어 범우가 아기였을 때 먹일 이유식이 없어서 배개 속 좁쌀까지 꺼내 먹였다는 대목에서 심각한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아버지는 잠시도 집에 붙어 있지 않았다. 기분파였던 그는 마음보다 행동이 앞서고 바깥에선 호인으로 통했으나 집에서는 독불장군이었다. 부부간에 진정한 소통이 없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가정을 꾸렸으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고 주변에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감정 기복에 따라 아이를 윽박지르고 매질까지 하였다. 그녀에게 주린 배를 채우려고 먹는 음식이 사료였고, 희망 없는 삶은 고통이었다.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스로 결정한 선택이 자살이었다.



범우는 아버지를 만나면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매정한 이유도 듣게 된다. 바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고, 엄마가 이해하지 못해 야속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 꿈이 가수, 엄마 꿈이 화가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사남매 중 제일 똑똑하고 그림도 잘 그렸지만, 가난으로 인해 꿈을 키우지 못한 어린 엄마의 마음도 이해하게 되었다. 폐교되어 이젠 캠핑장으로 변한 학교에서 어머니가 미술대회에서 받은 우승컵을 안고 오열하는 범우의 모습이 그려진다. “엄마……, 참 잘했어요. 정말 잘했어요”라며 따지고 싶고 원망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어린 소녀였던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 범우가 정리한 자료를 토대로 AI 음성 기술을 지원받아 드디어 죽은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연인이었던 유민과 깔끔하게 이별하고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처럼 늘 보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족끼리 진정한 소통이 없다면 남남보다 못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있어도 더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책 곳곳에서 범우 엄마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다만 가정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용기를 갖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범우 엄마가 보인 태도는 아쉬운 점이 많다. 어쩌면 아궁이에 자신이 그린 그림이 불쏘시개로 들어간 순간 희망을 빼앗긴 포로처럼 무기력한 상태로 변한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힘이 아니라 남편의 지지와 관심으로 살아가는 의존적인 존재가 되어 더 남편만을 바라본 것 같다. 지금 누군가가 나를 둘러싼 가족 구성원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본다면 난 얼마나 대답할 수 있을까 자문해본다. 내가 알고 있는, 아니 안다고 생각하는 가족들의 진짜 모습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문해보니 대답할 자신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건 착각일 수 있으며, 지금이라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는 경선 연구원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드러난다. “범우씨의 말이 제게 용기를 줬어요.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죠? 죽은 사람의 흔적을 끌어모으며 그리워하는 일보다, 산 사람과 직접 만나 오해를 푸는 일이 훨씬 쉬운 일이라고요.” 경선 연구원이 한 말처럼 죽은 자의 기록을 찾아 퍼즐 맞추듯 그렇게 이해하기보다는 살아있을 때 만나 오해를 풀며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 책은 끝이라는 목차에서 시작해서 ‘시작’이라는 목차로 끝난다. 끝자락에 서 있었던 범우가 결국 다시 ‘시작’이라는 희망으로 새 삶을 살 게 된다는 암시로 끝을 맺고 있다. 극적인 시나리오 기법을 활용해서 소설 긴장감을 잘 유지하고 있다. 어머니 산소 봉분에 누워 잠시 잠들었을 때 죽은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배를 쓰다듬어 준 장면은 범우 수술이 잘 되어 살 수 있다는 강한 암시를 준다. 더구나 살아 돌아와 싱글맘인 수연씨가 주는 보이차를 꼭 와서 먹겠다고 말한 대목에서도 범우는 살아서 수연씨와 행복한 만남을 가질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연락드리지 않았던 엄마에게 살아 계시는 지금 부지런히 연락을 드려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또한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동영상 촬영이나 목소리를 녹음해서라도 엄마에 대한 여러 가지 기록을 미리 남겨놓는 것이 좋겠다 싶어 기록작업을 할 계획을 세웠다. 언젠가 나도 엄마를 추억하며 AI 음성 기술로 구현된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범우가 어머니 기록을 모으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읽다 보니 살아 계실 때 미리 작업을 해놓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만나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엄마를 한 여성으로 해하자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이야기를 따라 걷다 보면 엄마라는 여성을 한 인간으로 충분히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받게 된다. 이 책은 가족 간의 갈등으로 고민 중이거나 힘들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책을 읽다 보면 지금 고민하면서 후회하는 것보다 직접 만날 수 있을 때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는 게 더 쉬운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니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라는 제목에 ‘이제야  사랑합니다’라는 부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글자로 글 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