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누르는 무게의 만큼 성장하고 싶다 -
일요일 오전 카톡 메시지 한 건이 보였다.
“오늘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근로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경황도 없을 텐데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그 친구의 심정이 헤아리기 벅찰 정도로 고맙고 미안했다. 나중에 이야기해도 되는데, 이렇게까지 아버님의 부고를 담담하게 전달하는 그 친구가 고마웠다. 왠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난 학창 시절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친구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 부모님의 부재는 살아가면서 더 크게 다가오며, 의지하거나 힘들 때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외로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라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고 밥 한 끼 사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친구와 점심 약속을 했다.
카톡이 왔다.
“우리은행 앞 ATM기기 앞에서 뵐까요 아니면 다른 곳에서 기다릴까요?” 점심시간 5분 전에 온 카톡을 보고서야 약속이 생각났다. 한의원 치료를 받으러 갈려고 했는데, 약속을 연기하고 우리은행 앞에서 보기로 했다. 친구를 만나니, 예상보다 평온하고 내색이 별로 없다. 길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땐 뭔가 뭔지 몰랐어. 그런데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부재 특히 경제적인 기둥의 역할이 그리웠어. 그리고 한참 후에 알았지. 사람마다 느끼는 공기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기쁠 때는 무중력에 있는 것처럼 떠 있다가도 슬플 때는 강한 압력기로 나를 누르는 것 같아. 그리고 어떤 때는 누군가가 나를 밑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기도 해. 그럴 땐 나만의 공기의 무게를 견디는 비법을 찾아내야 해. 난 나중에야 운동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혼자 홀로 생각하며 정리하는 것도 좋은 비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너도 그러길 바라.” 어린 친구가 이야기를 한다. “저도 사실 아직 모르겠어요. 아버님이 간암 판정받고도 괴로운 일로 술을 많이 드셔서, 치료했지만,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어요. 내년에 의병으로 갈 생각인데, 좀 더 지나 봐야 아버님의 부재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맛있는 식사 후 근처 ‘숯불로 볶은 커피집’에서 가장 맛있는 드립 커피를 한 잔 사주고 함께 경의선 산책길을 걸었다. 가을빛에 잎들이 다른 성깔을 내보이고 있었다. 하늘도 파랗고, 억새도 빛을 발하고 있다. 이런 여유가 오래만이다. 그 친구가 “잠깐 여행 온 것 같아요. 저도 이런 시간 자주 가져 볼게요.”라고 한다. 감성이 살아 있는 친구라서 그런지 삶의 공기 무게를 잘 견딜 것 같다. 난 자라는 내내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의 부재를 채워주지 못하는 엄마를 미워했다. 그러나 내가 막상 살아보니 참 힘든 일었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즉흥곡을 연주하는 기분이었구나 하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 위에 퍼져 있는 공기의 무게는 너무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공기지만, 어떤 이에게는 매일 악몽을 꾸듯 짓누르는 느낌의 공기일 것이다. 오늘 난 어떤 공기의 무게를 느끼면 살고 있는 가 자문해 본다. 공기의 무게는 결국 어떤 감정의 상태로 투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 항상 무겁지는 않다.
내 공기의 무게를 떨쳐내고, 오늘 하늘을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