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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ena May 28. 2019

그것이 진짜 사랑이었다

- 승호에게


#06  내 옆의 사람을 조금 더 사랑하기



  구 년 전 가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자원봉사활동으로 재활학교에 갔다. 그곳에서 승호를 만났다. 도통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내게 처음 선물해 준 친구였다.


  열셋이었는지 열넷이었는지 까물거리지만, 승호는 초등반에서 가장 형이었다. 그만큼 가장 의젓하게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 주었지만, 승호는 소리 내어 말로 의사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대신 표정으로 감정을, 손과 팔로 간단한 의사를 표현했다. 사실은 그마저도 조금 버거운 일이었으나,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조금씩, 차분하게, 끝까지 표현하려고 했다. 나는 그 모습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고, 어쩌다가는 존경스럽기도 했다. 종종 정신없이 떠드는 친구들 때문에 시선을 빼앗겨, (그의 방식으로) 말하기를 힘들게 시작했으나 결국 끝내지 못하고 그만두어야 했을 때도, 승호는 실망한 기색 없이 곧바로 다른 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내가 승호의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자세히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여섯 명이 전부인 초등반에서, 승호와 다른 한 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꽤 떠들썩했기 때문에, 두 눈만큼은 승호의 마음을 들으려고 애쓸 때가 많았다. 다만, 아무리 애써도 소란스러운 친구들에 정신이 빼앗길 때가 많았고, 때문에 승호를 이해하는 일은 끝내 쉬워지지 않았다.


  아마 그렇게 다섯 번쯤 재활학교에 갔을 때였던 것 같다. 그 날은 승호 옆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꺼내 책상 위에 펼치고 있었고 승호는 그런 나를 보고 있었다. 이내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를 읽고 승호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승호는 여전히 교과서 대신 나를 보았다. 그리고 어렵게 팔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방향 잃기를 몇 번, 마침내 닿은 곳은 내 머리칼이었다. 이마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가닥이 입술에 붙었던 모양이었다. 꽤 한참 힘들여 그 한 가닥을 떼어주고는, 지그시 미소를 띄어 보였다.


  나는 분명, 그 순간에 마음이 뜨겁게 일렁였고,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나를 응원해주는 엄마에게도, 믿어주는 아빠에게도,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살았던 가족들에게도, 내 곁에 있던 친구들에게도 느낄 수 없었던 것. 물론, 그들도 나를 더없이 사랑해주었으나, 어쩌면 감히 당연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가족을, 친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까. 결코 쉽다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 날의 승호는, 당연하지 않은 나에게,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았을 것에, 굳이 온 힘을 쏟아주었다. 그래서 그 날 돌아오는 길이 온통 눈물이었다.

  그 뒤로는 그처럼 사랑받는다 느낀 적이 없다. 그래서 요즘의 날들도 가득 눈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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