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통한 향의 전래와 초기 사용 양상
한반도의 역사에서 향(香)은 단순한 향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였고, 국가의 권위를 세우는 도구였으며, 공동체의 염원을 하나로 묶는 깃발이었다. 삼국시대 이전, 이 땅에도 쑥을 태워 부정을 쫓고 솔잎을 태워 신을 부르는 토착적인 향의 의례가 존재했다. 역사학적 관점에서 향은 상징체계(symbolic system)로서 기능했으며, 종교사회학적으로는 인간과 초월적 영역 사이의 매개체(medium)로 작용했다. 이러한 향의 의례적 활용은 단순한 향유의 차원을 넘어 신성성(sacredness)의 구현 및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실천적 도구였다고 볼 수 있다.
4세기 이후, 불교의 전래와 함께 도착한 이국의 향료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열었다. 이 독특하고 심오한 향기는 체계적인 종교 사상과 정교한 의례, 그리고 새로운 국가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한반도에 처음으로 전래된 향은 단순한 외래 물질에 국한되지 않았다.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세 왕국은 이 새로운 문화 요소를 각자의 방식으로 수용하고 변형하며, 자신들의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구조 속에 효과적으로 통합했다.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에 걸쳐, 고구려(서기 372년), 백제(서기 384년), 신라(약 527년)는 차례로 불교를 국가 종교로 공인했다. 이 시기 왕들에게 불교 수용은 개인적 신앙의 차원을 넘어선 고도의 정치적 행위였다. 혈연에 기반한 부족 연맹체를 벗어나 영토와 법률에 기반한 강력한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 나아가던 삼국에, 불교는 기존의 토착 신앙을 넘어서는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제공했다. 고구려는 광대한 영토를 통합하고 다종족을 아우를 정신적 구심점이 필요했고, 백제는 선진 문물 수용을 통해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특히 신라는 이차돈의 순교라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귀족 세력의 거센 반발을 누르고 불교를 공인했는데, 이는 불교 수용이 얼마나 치열한 정치적 과정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왕즉불(王卽佛), 즉 왕이 곧 부처라는 사상은 왕의 권위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강력한 논리였다. 향은 바로 이 새로운 국가 이념을 시각적, 후각적으로 구현하고, 왕의 신성함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였다.
향의 도입은 향나무 조각이나 향가루라는 물질의 이동만을 뜻하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공향(供香)'이라는 정교한 의례, '해탈향(解脫香)'이라는 심오한 상징, 그리고 향을 피우기 위한 '향로(香爐)'라는 새로운 기물 문화가 함께 들어왔다. 불교의 육법공양(六法供養: 등, 향, 꽃, 과일, 차, 쌀) 중에서도 향 공양은 으뜸가는 공양물로 여겨졌다. 향을 태우는 행위는 자신을 태워 세상을 정화하고 부처에게 공양한다는 자기희생의 상징이었다. 이는 보시(布施), 즉 나눔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불교의 가르침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피어오르는 향 연기는 인간의 기원이 시공을 넘어 부처의 세계에 닿게 하는 통신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이처럼 향은 처음부터 정신적 가치와 의례 체계가 결합된 복합적인 문화 현상으로 수용되었으며, 단순한 기호품이 아닌 신성한 의례의 중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눌지왕 시대에 일어난 향의 극적인 첫 등장이 기록되어 있다. 중국 양나라가 보낸 공물 중 하나였던 향은 신라인들에게 생소한 물건이었다. 아무도 그것의 이름이나 용도를 알지 못했고, 왕과 신하들은 단지 검은 나무 조각으로만 여겼다. 이때 고구려에서 온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나서서 왕에게 설명했다. "이것은 불에 태우면 향기로운 연기가 나는 것으로, 신성한 존재와 소통하는 정성의 표현입니다. 진심을 다해 기원하면 반드시 효험이 있을 것입니다." 마침 왕의 공주가 중병을 앓고 있었는데, 궁중의 모든 사람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묵호자는 그 낯선 향에 불을 붙였다. 곧 푸른빛 연기가 궁을 가득 채웠고, 그는 향을 피우며 공주의 회복을 기원했다. 기록에 따르면, 공주는 이후 병에서 완전히 회복되었다.
삼국시대 향 문화의 정점은 단연코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93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된 이 향로는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보존되어 있다가 부여 능산리 고분군 인근, 백제 왕실의 원찰(願刹)로 추정되는 절터 내 공방지 진흙층에서 발견되었다. 이러한 출토 상황은 이 향로가 단순한 매장품이 아닌, 실제 국가적 의례에서 활용되던 중요 의식용기였음을 시사한다. 높이 61.8cm, 무게 11.85kg에 달하는 이 대형 향로는 밀랍주조법(蜜蠟鑄造法)과 수은아말감도금법과 같은 백제의 선진 금속공예 기술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정교하게 표현된 인물상과 동물 문양, 전체적인 균형미는 백제 장인들의 기술이 당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입증한다.
향로는 백제인들이 이해했던 우주를 상징하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분은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완결된 세계관을 이룬다.
근원의 힘: 지하 세계의 용
향로의 가장 아래, 구조물 전체를 떠받치는 것은 강력한 용(龍)이다. 용은 물과 지하 세계를 관장하는 신수(神獸)로, 그 입에서는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적인 기(氣)가 뿜어져 나와 위쪽의 연꽃 세계를 탄생시킨다. 이는 우주가 혼돈과 생명의 근원인 물에서 시작된다는 고대 동아시아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용의 역동적인 자세와 꿈틀거리는 근육의 표현은 향로 전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정화와 재생: 불국토의 연꽃
용이 피워낸 기운 위로, 향로의 몸체는 활짝 핀 연꽃 모양을 하고 있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은 불교에서 순수, 재생, 그리고 깨달음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도상이다. 연꽃잎 위에는 물고기, 사슴, 학 등 다양한 동물과 두 명의 신선이 묘사되어, 생명이 충만하고 정화된 불국토(佛國土)의 세계를 보여준다. 연꽃잎의 부드러운 곡선과 그 위에 배치된 생명체들의 조화는 평화로운 불교적 이상 세계를 시각화한다.
신선들의 낙원: 박산의 풍경
몸체 위 뚜껑은 겹겹이 쌓인 신령스러운 산봉우리, 즉 박산(博山)을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신선들이 불로장생하며 산다는 도교의 이상향이다. 이 신선의 세계에는 금(琴), 완함(阮咸), 배소(排簫), 퉁소, 북을 연주하는 5명의 악사를 포함한 17명의 인물과, 호랑이나 사슴 같은 실제 동물부터 코끼리, 원숭이 등 외래 동물 및 상상의 동물 42마리가 조화롭게 공존한다. 이는 백제의 폭넓은 국제적 인식과 평화로운 이상 세계에 대한 염원을 드러낸다. 향로에 향을 피우면 12개의 구멍을 통해 피어오르는 연기가 산봉우리를 감싸며, 신비로운 구름과 안개가 자욱한 신선의 세계를 현실에 구현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시각 효과를 넘어, 인간 세계의 기원이 신성한 세계로 승화되는 과정을 의례적으로 재현하는 장치였다.
하늘의 권위: 만물의 정점, 봉황
이 모든 세계의 정점에는 상서로움과 왕권, 그리고 하늘(양의 기운)을 상징하는 봉황(鳳凰)이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위엄 있게 앉아 있다. 봉황은 받침의 용(음의 기운)과 완벽한 상징적 대칭을 이루며 음양의 조화를 완성한다. 봉황의 존재는 이 모든 이상 세계를 통치하고 관장하는 주체가 바로 백제의 왕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봉황의 당당한 자세와 힘찬 날갯짓은 백제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불교적 구원, 도교적 불멸, 유교적 질서가 융합된 통합적 세계관을 담은 선언문이었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산봉우리를 통해 인간의 기원이 신성한 영역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금동대향로는 백제왕에게 강력한 통치 도구였으며, 왕은 이 복합적 우주의 중심에서 국가의 안녕을 위해 모든 영적 힘을 중재하는 유일한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수단이었다.
왕실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향 문화는 신라에서 독특한 사회 조직의 형태로 민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향도(香徒), 즉 '향의 무리'라 불리는 이 불교 신앙 공동체는 향의 의례적 사용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신라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향도에 관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김유신을 따르던 화랑 무리를 지칭하는 '용화향도(龍華香徒)'에서 찾을 수 있다. '용화'는 미래에 나타나 세상을 구원할 부처인 미륵(彌勒)이 깨달음을 얻는다는 용화수(龍華樹)를 의미한다. 이는 초기 향도가 화랑이라는 신라의 엘리트 청년 집단 및 귀족 사회에서 유행하던 미륵 신앙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삼국 통일 전쟁의 격동기 속에서, 화랑들은 미륵의 도래를 염원하며 향을 피웠고, 이는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의례였다. 화랑들에게 향을 함께 피우는 행위는 전장에서 생사를 함께하겠다는 맹세이자, 다가올 미륵의 세상을 함께 열겠다는 약속이었다.
'향도'라는 명칭 자체가 이 조직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향을 받드는 무리'라는 뜻은, 향 공양이 이들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가장 핵심적인 통일 원리였음을 의미한다. 향을 함께 마련하고, 함께 사르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기도하는 행위는 단순한 종교 의례를 넘어, 구성원 간의 사회적,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향도는 신앙을 매개로 한 일종의 사회적 계약 공동체였던 셈이다. 초기에는 수도 경주와 귀족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향도 조직은 점차 왕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신라 하대로 접어들면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지방 세력이 성장하자, 향도는 지방 사회의 주요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들의 주된 기능은 불상, 석탑, 사찰, 범종 등을 조성하는 거대한 집단적 불사(佛事)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향도는 개인의 구원을 넘어, 지역 사회의 복을 기원하고 공동체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자원과 노동력을 공동으로 마련하는 강력한 사회경제적 조직의 성격을 동시에 지녔다. 그들은 함께 밭을 갈고, 함께 기금을 모아 불사를 진행했다.
이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는 865년에 조성된 철원 도피안사(到彼岸寺)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불상 뒷면에 새겨진 기록에는, 이 불상이 무려 1,500여 명에 달하는 지방 향도 조직의 결연(結緣)으로 만들어졌다고 적혀 있다. 1,500명이라는 숫자는 당시의 인구 규모를 고려할 때 엄청난 규모이다. 이는 9세기 후반에 이미 향도가 수도 경주의 중앙 종교 권위와는 별개로, 지방 호족(豪族)을 중심으로 한 거대하고 독립적이며 잘 조직된 단체로 활동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신라 하대 불교 신앙의 '민주화' 과정과 사회 권력의 지방 분산 현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증거다. 향도는 새로운 시대의 권력 구조를 예고하는 사회적 현상이기도 했다.
향도의 기능은 종교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후대의 기록들을 통해 유추해 볼 때, 이들은 점차 지역 사회의 상호 부조 조직, 즉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까지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혼례나 상장례와 같은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 돕고,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재난이 닥쳤을 때 공동으로 대처하는 등, 향도는 신앙을 넘어 생활 공동체로 발전해 나갔다. 향을 함께 피우던 약속은 삶의 모든 고락을 함께 나누는 약속으로 확장된 것이다.
한반도의 고대사에서 향(香)이 걸어온 길은, 그것이 단순한 외래 문물이 아니라 시대를 정의하고 사회를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이었음을 증명한다. 왕의 권위를 신성하게 만들고 국가의 이념을 선포하던 장엄한 도구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민중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공동체의 염원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되기까지, 향은 시대의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그 역할과 의미를 확장해 나갔다.
백제금동대향로가 불교와 도교, 그리고 당대 세계관의 집약체로서 향 문화의 예술적, 사상적 정점을 보여주었다면, 신라의 향도는 향이 어떻게 사회를 조직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실천적 동력이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증명한다. 왕실의 전유물이던 향은 민중의 손에 들려 미래를 향한 약속(龍華香徒)이 되었고, 나아가 거대한 불사를 일으키며 지방 사회를 결속하는 사회경제적 조직의 씨앗이 되었다.
이처럼 삼국시대의 향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이자, 보이는 세계의 질서를 구축하는 도구였다. 피어오르는 향 연기 속에는 왕즉불 사상을 통한 중앙 집권의 열망, 불국토와 신선 세계를 향한 이상향의 추구, 그리고 미륵의 세상에서 구원받고자 했던 민중의 간절한 기원이 모두 담겨 있었다. 삼국시대의 향 연기는 그렇게 한 시대의 정신을 오롯이 품은 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했다. 그 깊고 그윽한 향기는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고대인들의 꿈과 믿음, 그리고 열망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