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들 사이에 멈춰 선 마음
연말을 맞아 큰맘 먹고 대청소를 시작했지만, 어느새 방 한가운데 앉아 낡은 상자 하나를 들고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버리려고 손에 쥐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마음이 약해지고, 언젠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결국 방은 그대로고, 마음만 무겁게 가라앉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초민감자는 사물을 단순히 기능적인 도구로만 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물건에 담긴 추억, 그것을 선물한 사람의 마음, 그 물건과 함께했던 나의 감정까지 깊이 있게 처리하고 저장합니다. 낡은 인형 하나를 볼 때도, 어린 시절의 위로와 포근함이 함께 떠오르기에 그것을 버리는 것이 마치 나의 소중한 친구나 과거의 나를 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물에 감정을 이입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이 섬세한 능력은, 역설적으로 이별을 어렵게 만들고 물건을 쌓아두게 하는 주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버렸다가 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정리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입니다.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하는 HSP의 뇌는, 지금은 필요 없는 물건이라도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지 모른다는 희박한 가능성까지 고려하게 됩니다. 이러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비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방어 기제일 수 있습니다. 물건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안전함을 느끼고, 비워냄으로써 발생할지 모를 결핍이나 불편함을 미리 걱정하는 마음이 손을 멈칫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물건 하나를 버릴지 말지 결정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이게 정말 필요한가?, 추억이 담긴 건데 버려도 될까?, 누구 줄 사람은 없을까? 등 수많은 질문과 갈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자극으로 이미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에서, 이러한 결정을 수십 번 반복해야 하는 대청소는 HSP에게 엄청난 결정 피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결국 뇌가 과부하 상태가 되면, 결정을 미루고 물건을 그대로 두는 것이 에너지를 아끼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선택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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