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기억하는 당신에게
향기를 쓴다는 건, 어쩌면 내 마음을 다시 듣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평소엔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감정을 향이라는 조용한 언어를 통해 마주하게 되는 순간. 그것은 마치 오래된 편지를 펼쳐보는 일과도 닮아 있습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글씨 하나, 문장 하나가 오래된 감정을 되살려 주듯이, 향은 우리 마음의 아주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이야기를 천천히 깨워줍니다.
살다 보면 마음이 참 복잡할 때가 있습니다. 혹은 너무 멀리 밀려나 희미해진 감정 앞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는 날들이 있죠. 정신없이 바쁜 하루 속에서도, 반대로 깊고 무거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놓치곤 합니다. 그럴 땐 나조차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내 감정의 윤곽은 흐릿해지고 그 깊이조차 가늠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럴 때 저는 아주 작고 단순한 동작으로 마음을 돌려보곤 합니다. 조심스럽게 에센셜 오일병을 열고, 그 안에 담긴 향기를 맡는 일. 향이 퍼지는 짧은 순간, 눈을 감고 그 향에 나를 맡기면, 복잡했던 마음이 잠시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의 나와 마주할 수 있습니다.
세상엔 향을 불필요한 사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향은 결코 사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언어이고, 나와 나를 연결하는 감각이며, 혼자 있는 시간을 더욱 깊게 만드는 섬세한 도구입니다.
이 연재를 시작할 때, 저는 거창한 치유나 커다란 변화를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향기라는 조용한 동반자를 통해 ‘지금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을 뿐입니다.
마치 오랜 친구와 나누는 대화처럼, 내 마음을 조금 더 따뜻하고 정직하게 바라보는 연습이 되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 바람이 어느새 누군가의 일상에 닿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저는 조용한 기쁨을 느낍니다.
향은 순간 머물다 사라집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강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어린 시절 벗겨낸 귤 껍질의 향, 비 오는 날 책장에서 묵은 종이 냄새가 풍겨올 때의 정서, 혹은 첫 이별 후 방 안에 남아 있던 향수 냄새. 그런 향들은 단순한 냄새 그 이상으로, 감정의 조각이자 기억의 열쇠가 되어줍니다.
그동안 이 연재에서 우리는 일랑일랑이 필요했던 밤을 지나고, 버가못 덕분에 안정을 되찾은 아침을 건넜으며, 울음을 참느라 지친 날에는 조용히 샌달우드를 꺼내어 마음을 붙잡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이제는 당신 안에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여정을 기록으로 남겨볼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를 가장 잘 표현하는 감정을 하나 떠올려보세요.
무기력, 설렘, 허전함, 두려움, 고요함… 어떤 단어든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느낀 순간을 짧게 적어보세요. 길게 쓰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이 움직인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잠시 눈을 감고,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향을 떠올려보세요.
실제로 지금 맡을 수 있는 향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3. 향을 맡으며 떠오른 기억은?
향은 우리의 기억을 조용히 깨워냅니다.
그 향을 떠올렸을 때, 어떤 순간이 다시 살아났나요?
마지막으로, 지금의 나에게 꼭 건네주고 싶은 말을 적어보세요.
위로든 격려든, 당신만이 해줄 수 있는 진심을 담아주세요.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이런 말을 꺼냅니다. “저는 제 감정을 잘 모르겠어요.” “어떤 향이 저와 맞는지 알기 어려워요.” “향을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왜 그런지 설명하기 어렵네요.” 그럴 때 저는 한 권의 노트를 건넵니다. 그 안에는 향과 감정을 연결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질문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 질문에 하나씩 답하다 보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마음속에 숨어 있던 감정과 생각들이 천천히 떠오릅니다. 무언가를 분석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냥 지금 느끼는 감정을 정직하게 적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루를 돌아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을 한 단어로 적어보세요. 무기력, 두려움, 고요함, 설렘, 허전함, 충만함... 어떤 감정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언제, 왜 느꼈는지 짧게 덧붙여주세요. 그 순간에 어울리는 향기가 있다면 함께 적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향이 자연의 향이든, 상상 속의 향이든, 기억 속에 묻어 있던 어떤 냄새든 모두 괜찮습니다. 그 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아주 평범한 순간이라도 괜찮습니다. 나만 알고 있는, 나만 기억하는 이야기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오늘의 나에게 필요한 한마디를 써주세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을 이 페이지에서, 오직 나 자신에게만 전하는 따뜻한 위로 한 줄. “오늘은 울어도 괜찮아.” “넌 충분히 잘했어.” “조금 쉬어도 돼.” 그렇게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일은, 때로 어떤 조언보다 깊고 단단한 힘이 되어줍니다.
이 노트는 매일 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꺼내보아도 좋습니다. 향은 머물렀다 사라지지만, 기록은 남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어느 날 문득, 나에게 다시 돌아와 위로가 됩니다.
우연히 펼쳐 본 노트의 한 장에서, 지나간 향기와 함께 그날의 감정을 다시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방법을 배워갑니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여정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당신이 직접 써내려가는 노트 속에서, 당신만의 향기를 만나고, 그 향과 함께 조금 더 단단한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연재는 끝났지만, 당신의 기록은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도 당신 곁에 좋은 향기가 머물기를.
그리고 언젠가, 당신의 이야기를 품은 향기로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