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금슬금 정신을 가다듬어보니 몸이 침대에 누워 있다. 나는 알아챈다. 닫힌 눈꺼풀 너머로 이미 '동창이 밝았'음을.그리고 내적 절규와 함께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아아, 어쩌자고 여태까지 잔 거지!!!? 그리고 몇 초 안에 깨닫는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어. 오늘은 휴일이야.
이건 최근 2년여 동안 꽤나 여러 번 경험한 일이다. 다행히 아직 늦잠 때문에지각(!) 한 적은 없다. . . 잠에서 깼다. 아직 눈을 감고 있지만, 밖이 환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손을 뻗어 실눈을 뜨면서 스마트폰을 열고 게으름을 부려본다. 이건 오늘 아침의 일이다 . . 일주일의 휴무 공지를 내걸었다. 명절도 가족행사 때문도 아니고, 일이 있어 육지에 가야 해서도 아니고, 이놈의 코로나19 때문이다. 제주에 여행객이 눈에 띄게 뜸해지고 지역 유동인구 자체가 확 줄어들어 매출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하루하루 매출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식재료와 음식의 신선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컸다.
아무튼 이러저러해서, 정기휴일을 포함하면 공식적으로 오늘은 휴무 사흘째다.하지만 쉬고(!) 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입술이 터지고, 눈떨림은 더해졌다. 벌지는 못하는데도 돈 나갈 일은 꼬박꼬박 찾아오기 마련이니, 기댈 곳 없는 자영업자는 맘이 편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어젯밤에는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책을 읽다가 문득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 갑자기 실실 웃음이 났다. 책이 재미있어서 평소의 취침시간보다두 시간은 족히 지난 줄도 몰랐던 거다.기상시간 강박 없이책을 읽어도 된다는 거.그게 뭐라고, 순간 행복해져버렸다.
'아침식사 가능'한 곰탕집을 하고 있는 나는 이른 아침에 일어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벽이라 부르는 시각이다. 그리고 밤 9시가 조금 넘으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불타는 무슨 요일 같은 건 사실 없다. 일주일에 하루뿐인 휴일에는 밀린 집안일 외에도 평일에 해치워야 하는 관공서와 은행, 병원 업무 따위가 도사리고 있어서 휴일 전야에 늦게까지 깨어있기는 불안하다. 이놈의 빌어먹을 생체리듬은 휴일에도 일찍 몸을 깨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은 다시 새벽 기상.
생각해보니 어제처럼 평화롭고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가진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일어나자마자 시간에 쫓겨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아침. 졸리면 잠깐이라도 잘 수 있는 오후. 할 일이 정해져 있지 않은 휴일.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 내가 아무도 케어하지 않아도 되는 휴가. 해야 할 일,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지 않은 여행. 천천히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식사시간.
난 어쩌면 그동안 열심히 일하는 것 말고도, 열심히 놀고 열심히 다니고 열심히 뭔가를 즐겨야 한다는 생각에 이미 눌려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나는 갑자기 닥친바이러스환난 속의 휴가를 최대한별 것 아닌 일들을 하며 지내보려는 중이다.오늘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집안 구석구석을 어슬렁대고 다녔다. 평소에 가게에서는 틀지 않을 음악들을 한참이나골라서 틀어놓고, 충분히 환기를 하고,느릿느릿 청소를 했다. 그리고는 핸드밀로 원두를 갈아 내린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데스크탑' 앞에 앉아 뉴스를 검색했다.
늦은 점심 겸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하루 종일이리저리 궁리한 끝에(가게에서 일하는 중에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병아리콩과 아보카도, 파프리카와 토마토, 삶은 달걀을 듬뿍 넣고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소금, 후추, 레몬즙을 뿌려 버무린 샐러드를 천천히 만들어서 푸짐하게 먹었다.
화이트 와인도 듬뿍(!) 곁들였다. 베란다 너머로는 해가 채 지지 않아서, 자타공인집순이에게는꽤우아하고 만족스러운 혼낮술(!)이었다.
아 참, 만년필 잉크도 새로 넣었다.
내일은 언젠가 필사하려고 모서리를 접어둔 시들을 드디어 노트에 옮기는 또다른시답잖은 일을 할 예정이다.
하고 싶은 것들만 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외부의 상황에 휘둘리거나 기대지 않는 건 결국 내면의 작은 용감함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눈에보이는 것들, 물리적인 세상이 전부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