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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naree Feb 18. 2021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명절에는 좀 많이 먹어도 괜찮잖아요

부모님 10여 년을 살던 여주의 전원주택을 떠나 경기도 광주로 이사하셨다. 부엌도 마당도 데크도 널찍널찍하던 주택은 편리한 만큼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품이 많이 들었다. 집을 단속하는 게 점점 힘에 부치자 과감히 이사를 결정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동안 엄청나게 늘어난 살림의 규모를 다시 줄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나의 이사와 날짜가 하루 차이로 붙어버리는 통에 양쪽 집을 오가며 집 정리하는 데에만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규모와 거리가 만만찮은 두 집 이삿짐을 정리하고 나니 온 몸이 근육통과 멍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힐링이 필요했다. 즐거워지기 위한 요리를 해야 한다. 맛있게 먹기 위한 음식을 만들어야지. 뭐가 좋을까.


나이와 더불어 식사량이 현저히 줄어든 부모님의 요즘 아침식사는 퍽 간소해졌다. 삶은 계란 반숙, 사과, 양배추즙, 우유, 떡 한 조각이 보통의 메뉴다. 때때로 사과 외에 다른 과일로 대체하기도 하고, 우유 대신 선식이나 허브티, 야채주스 등이 올라오기도 한다. 마침 한동안 맛나게 먹던 쑥떡이 떨어져 가니 이번엔 콩과 밤을 넣어 영양떡을 만들기로 했다.

콩, 밤에 흑설탕 시럽을 넣고 끓이면서 졸인다

제주에서 서울로 다시 이주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이삿짐은 거의 정리되었고 나의 '월정곰닭' 시즌2(서울 마포에서 곧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는 아직이라 잠시 시간이 여유로운 편. 더구나 명절을 며칠 앞둔 터라 여차저차 엄마와 떡 만들기에  돌입했다.


어릴 때부터 떡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요즘은 떡을 잘 먹지 않게 되었다. 떡 한 덩이에 얼마나 많은 찰밥이 압축되어 있는지를 생각하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요즘 탄수화물과 당 섭취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라 떡, 밥, 빵, 면은 최고로 경계해야 하는 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을 만드는 과정은 신났다. 부모님이 살던 집 뒷산에서 일일이 주워 삶아 껍질 벗겨 저장해 두었던 밤을 꺼내고, 마당의 대추나무를 털어 수확해 말려놓은 대추도 등장했다. 곶감도 손질해서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손이 많이 가고 힘들지만, 잘 갈무리해 두었던 식재료들을 맞춤으로 딱 꺼내 쓸 때의 뿌듯함 같은 것이 있다.

곶감, 대추를 잘라서 준비해 둔다

요즘은 방앗간 자체도 귀해져서 찾기가 쉽지 않은데, 부모님 집 바로 근처에 제법 큰 방앗간이 있어 찹쌀을 직접 빻아오기로 했다. 아침 일찍 물에 담가 둔 찹쌀을 건져 체에 밭쳐 물기를 빼 들고 방앗간으로 향했다.


명절을 앞둔 방앗간은 분주하다. 갓 뽑은 가래떡이 천장까지 켜켜이 쌓여있고, 떡국용으로 썰어놓은 떡은 봉지마다 담겨 속속 팔려나간다. 기름기 좔좔 흐르는 명절 음식들에 빠질 수 없는 참기름 들기름들도 줄줄이 세워져 있다. 오랜만에 보는 방앗간 풍경이 정겨워서 한참 두리번거리게 된다.

방앗간에서 빻아 온 찹쌀가루

금을 약간 가미해 빻은 찹쌀가루는 환하고 곱다. 뽀드득한 가루를 쏟아놓고 본격적으로 재료들과 버무릴 차례다. 흑설탕에 졸여놓은 밤과 콩은 적당히 거뭇한 색을 입고 잘 식었다. 고소함을 더하기 위해 견과류도 듬뿍 넣는다. 엄마가 좋아하는 호박씨가 넉넉히 들어갔다. 옷을 입히는 느낌으로 포슬포슬하게 찹쌀가루 버무려준다.

찜기에 깨끗하게 씻어 말려둔 면포를 깔고, 불을 올린다. 속재료들을 잘 펼치고 중간중간 찹쌀가루를 뿌려 뚜껑을 덮고 찌기 시작.

완성된 떡을 작게 썰어 식힌다

완성된 떡은 적당히 식혀 참기름을 바른 칼로 잘랐다. 아기 주먹 정도의 크기면 아침 요기나 간식으로 딱이다. 많이 달지 않은 고소한 영양찰떡 스물일곱 개가 만들어졌다.

냉동보관을 위한 준비 끝

냉동 보관해야 하는 떡은 랩으로 잘 감싸 두었다. 지퍼백 두 개에 알차게 들어찬 떡 뭉텅이를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든든하다.

제일 작아 보이는 떡 하나를 꺼내 베어 물어본다. 쫄깃하고 달콤하다. 대체적으로 저탄수 식단 중이지만, 명절엔 식이조절 따위 흥칫뿡이다. 암요 암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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