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넘어서지 못했던 바로 그 벽에 도전하는 소소한 일상기록
5월 20일, 첫 날
스케이트보드를 본격적으로 타지 않은지도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일단 쓰리킥의 기본적인 동작 먼저 끌어올리기로 했다. 점프를 하는 알리 동작, 그리고 보드를 돌려주는 킥플립을 어느정도 끌어 올려놓아야, 응용 기술을 연습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첫날에는 킥플립을 한번은 타보자는 마음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회사 근처에 좋은 바닥이 있는 장소가 없어서 애매했지만, 가볍게 알리와 플립 연습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는 있었다.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스팟’이라고 할 수 있다. 스팟이라는 건 결국 어디에서 타느냐 인데, 마치 문명이 큰 강을 끼고 형성되는 것처럼, 스케이트보드를 타기에 적합한 여러 시공간적, 사회 규범적 요소가 복합되어야한다.
스팟의 구성 요소 중 가장 첫번째는 바닥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이면 누구나 좋은 바닥에 대한 기대를 가진다. 좋은 바닥은 반질반질한 호텔 대리석 바닥 처럼 너무 미끄러워도 안되고, 당연히 보도블록 처럼 올록볼록한 형태도 선호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도블록 중에도 단차가 거의 없고 사선 형태로 생긴 보도 블럭은 주행할 때 매우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선호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스팟으로 작동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바닥은 거친 화강암 판석이다. 보통 큰 공원이나, 기업 건물 앞, 지하철 역사 앞이 이런 바닥을 가졌다. 이 바닥은 바퀴에 대해 적당한 그립감을 제공하면서도 요철이 없어서 기술 연습에 유리하다. 점프를 하려고 자세를 낮추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 어떤 포인트에서 팝을 주어야할지 바닥 균열만 보고있을수는 없으니까.
스팟의 두번째 구성요소는 유동인원 및 동선이다. 스케이트보드 기술 연습을 위해서는 큰 공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당히 발로 두번정도 밀고, 자리를 잡고, 점프 후 착지하려면, 적어도 사방으로 10미터 정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거기에 유동인구가 너무 많다면 위험요소가 크다. 또, 적당히 앉아서 쉬고 숨을 고를 수 있는 벤치 등의 구조물도 있다면 더할나위가 없겠다.
다음 구성요소는 위치이다. 위의 조건을 만족하는 스팟들은 종종 큰 회사의 빌딩 앞이나, 학교 어딘가 등의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입지조건을 갖추는 일이 많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앞 바닥도 매우 훌륭하다.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곳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혼나겠지) 그래서 해외 스케잇 영상을 보면 건물 경비원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스팟을 선택할 때는, 누구도 뭐라하기 애매한 곳이 좋다. 공원의 한 켠이나, 지하철 역사 앞 광장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때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스팟들, 컬트훈련공원이나 보라매공원, 마두역광장, 올팍 등이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약 30분 정도 짬을 내어 회사 근처에서 이러한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장소를 찾기는 조금 어려웠지만, 근처 아파트단지 공원 한켠에서 약간 좁지만 연습할 수 있는 공터를 발견했다.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면서도, 오랜만에 보드에 몸을 올리는 기분은 좋았다. 선선하게 바람도 불었고, 살짝 흐린 날씨가 너무 덥지 않아서 좋았다. 당분간은 기본기를 다시 점검하기 위하여 알리와 킥플립에 집중 할 것이다.
이 날의 연습에서는 킥플립을 어렵게 한 두번정도 탈 수 있었다. 거의 간신히라는 느낌이 들었다.
좀더 킥플립을 자연스럽게 탈 수 있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60킥플립까지 갈 길이 멀지만, 연습을 시작했다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고 다음 연습을 준비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