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嚥下)
[명사]
1. 꿀떡 삼켜서 넘김.
2. 의학 입속에 있는 음식물을 삼키는 동작. 제1단계는 혀가 음식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 수의적인 동작이지만, 그다음부터 위까지 들어가는 제2단계와 제3단계는 근육의 반사적 동작이다.
출처: 네이버어학사전
스스로를 ‘노력하지 않는 천재’라 생각하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그는 천재가 아니었다.
점점 기울고 있는 집안 형편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어야 했던 연서가 4학년 졸업반 올라가던 3월. 재수한 스물한 살의 그, 준현이 대학에 입학했다. 아르바이트와 학점 관리로 사는 게 뻑뻑했던 연서가 보기에 세게 멋을 낸 준현은 어쩐지 과한 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복학한 고학번 남자애들에게 몇 번 불려갔었던 모양이었다.
자주 마주칠 일은 없었다. 과 활동에 꼬박꼬박 참여하는 ‘인싸’도 아니었고 4학년이 과 행사에 열심히 참여해봤자 눈치 없는 늙은이로 뒤에서 욕이나 할 테니까. 게다가 그냥저냥 점수 맞춰 들어온 ‘인서울 4년제’ 대학 국문과는 취업과 사회생활, 연서의 엄마가 말하는 ‘사람 노릇’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아서, 입학과 동시에 적당히 겉돌며 지내왔다. ‘그나마 과외며 학원 보조 알바라도 구할 수 있는 수준의 학교라도 들어와 다행’이라고 스스로에게 빈정거렸다.
그래서 준현을 보면 어쩐지 일부러 삐딱한 척, 뭔가 있는 아웃사이더인척 하던 스무 살의 자기 자신이 떠오르는 구석이 있었다. ‘난 너네와 달라’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지만 개강파티 맥주 마시러 갔을 때, 같이 앉는 사람이 없어 살짝 기가 죽는 표정을 봤다. 학생식당에서 전공 책을 뒤적이(는 척하)며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걸 봤다.
집안 형편은 연서에 비해 훨씬 더 나은 듯 했다. 장학금을 놓치면 당장 다음 학기 등록이 불안했던 연서는 모든 수업이 악착같았지만 준현은 전공수업에서조차 태도가 안 좋았다. 가끔씩 비스듬하게 손을 들고 교수에게 질문을 했지만, 딱히 정곡을 찌르거나 하진 않았다. ‘관종질 또 시작.’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소곤거렸다. 저렇게 막하고 다녀도 등록금 걱정이 없는 건 좀 부럽기도 했다.
연서가 학회 종강모임에 굳이 간 건, 그날따라 과외학생이 수업을 다음 주로 미루자고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캠퍼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초여름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서글픈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1학년 시절의 나를 보는듯한 준현이 머쓱한 표정으로 무리를 따라나서는걸 보니 같이 가서 말이라도 좀 섞어주고 ‘쨘’이라도 해주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연서는 사실 원래 술을 잘 먹는다.)
...얼큰하다. 얼큰한 준현이 얼큰한 연서를 앞에 놓고 얘기를 한다.
“누나, 연하도 괜찮으면 나 기다릴래요? 나 군대가요.”